엔비디아의 GPU도 '지혜'를 코딩하지는 못한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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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소크라테스 / 이진우

인간처럼 사고하는 AI 시대 코앞
AI와 차별되는 인간 정체성 고민
소크라테스 사유 방식에서 '해법'

<AI 시대의 소크라테스> 표지. <AI 시대의 소크라테스> 표지.

인공지능(AI)에 대한 기억들. 우선, 어릴 적에 본 영화 ‘터미네이터’(1984). 사람을 위해 만든 로봇(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가졌으니 이 또한 인공지능이다)이 사람을 지배한다. 공포스럽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다. 그러나 조금씩 현실이 되어간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알파고’는 바둑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을 꺾었다. 충격. 그리고 그 충격은 어느새 일상이 된다. 2022년 생성형 AI ‘챗GPT’가 상용화되면서 일반인들도 AI의 효능을 몸소 체험한다.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하고, 원하는 이미지의 그림을 그려주며, 영상까지 만들어낸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사고방식과 비슷하거나 인간을 넘어서는 일반인공지능의 등장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터미네이터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인간이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AI 시대의 소크라테스>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 전환점의 시대에 인간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거 전통 형이상학의 시대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주목했다면, 이제 우리는 인간과 기계(인공지능)의 차이를 성찰해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소크라테스인가. 저자는 현대의 인공지능이 고대 아테네에서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지식과 기술을 전수했던 소피스트와 같다고 본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의 소피스트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했지만 정작 지혜는 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챗GPT를 통해 아무리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 해도, 조건검색 몇 번으로 삶의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당대의 소피스트를 비판하고 지식이 아닌 진정한 지혜를 추구한 소크라테스의 질문 방식에서 새로운 시대(저자는 ‘포스트휴먼 시대’라고 표현한다)의 인간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의 전개는 크게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기계는 느낄 수 있는가’ ‘기계는 자유의지가 있는가’의 세 가지 물음에 차례로 대답하는 과정을 밟는다. 세 가지 물음에 대해 여러 철학적 도구를 가져와 탐구한 결과, 앞서 언급한 바처럼 기계는 (소피스트와 마찬가지로) 지식은 전달하지만 지혜는 전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책의 대부분은 인공지능 이야기로 채워지지만, 인공지능의 시대(포스트휴먼의 시대)에 더욱 인간답게 사는 방법을 모색하기에,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렇다고 저자가 인공지능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학적·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테다.

다만 다소 매끄럽지 않은 번역서 같은 문장 때문에 독서에 보다 과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가뜩이나 어려운 철학적 추론 과정이 더욱 어렵게 들린다. 그럼에도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곧 다가올 암울한 ‘터미네이터의 시대’에 대한 공포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희망(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는)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덮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 또한 과도한 긍정회로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지혜라는 것이 과연 인간 사고의 독점물일까. 탐욕적이고 어리석은 인간보다 더 지혜로운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SF 영화도, 수없이 많다. 이진우 지음/휴머니스트/248쪽/1만 75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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