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LA로 간 부산 거북선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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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1963년 직할시로 승격한 뒤 성장 가도를 달린다. 당시 부산의 도시 설계자들은 임진왜란에 맞선 항쟁의 정신을 부산의 DNA로 여겼다. 부산을 남북으로 종주하는 간선도로에 부산의 임진왜란 3대 영웅을 중추로 배치한 게 의미심장하다. 부산진구 양정에서 동구 초량에 이르기까지 동래부사 송상현 공과 다대진첨사 윤흥신 장군, 부산진첨사 정발 장군이 차례로 우뚝 서서 ‘싸우다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는 건 어렵다’는 결기를 드러낸다. 개전 초기 동래성이 함락됐지만, 이순신 장군의 부산포해전 승전으로 일본군이 전의를 상실하면서 전세가 승기로 바뀐 곳도 부산이다. 선각자들이 부산포해전 승전일인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지정한 까닭이다. 1980년의 일이다.

그즈음 부산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시와 자매 도시 협약을 맺게 된다. 결연을 기념하는 선물로 거북선 모형이 선정된 건 당시 분위기상 자연스러웠다. 1982년 LA로 간 거북선은 이후 42년간 LA시청 3층 시장 집무실 앞 복도에 전시되어 부산을 알렸다. 그런데, LA시가 2028년 올림픽 준비에 돌입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거북선을 LA컨벤션센터로 이전한 자리에 올림픽 오륜기 등의 전시장을 확보하기로 한 것.

한인 교민 사회는 기증자에 대한 사전 양해가 없었다는 점, 1984년 LA 올림픽 때도 그 자리에 그대로 전시된 점을 들어 이전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의회에 항의했다. 파문이 커지자 결국 캐런 배스 LA시장이 사과했다. 배스 시장은 8월 29일 부산시 LA 무역사무소, 현지 한인 단체 대표단과 만남을 갖고 일방 추진된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올림픽 규정에 필수인 ‘청사 내 오륜기 설치’ 공간 확보를 위해 기증품 이전은 불가피하다며 양해를 당부했다. 덧붙여 다른 전시 장소를 추천하면 적극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LA컨벤션센터는 연간 200만 명이 찾는 곳이고, LA 올림픽 때 태권도 등 5개 종목의 경기장이라 국제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는 입지라는 게 LA시 설명이다. 또 ‘부산 거북선’이 노후화됐기 때문에 이참에 보수한 뒤 제막식까지 갖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개인 간 선물이 아닌 외교적 유품이기 때문에 시청사 전시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다는 논리가 맞선다. 한인 사회는 시장 면담 이후 ‘부산 거북선’의 전시 위치에 대해 공청회 등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부산 거북선’이 어디에 있어야 부산을 가장 잘 드러낼까.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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