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동행’ 고려아연·영풍, 경영권 분쟁 ‘파열음’ [이슈 분석]
영풍, MBK와 주식 공개매수
고려아연 “약탈적 행위” 반발
정부 대기업 순환출자 규제로
공동 창업주 일가 균형 깨져
75년 동행하던 영풍과 고려아연이 최근 경영권 분쟁을 벌이며 파열음을 내고 있다. 본격적인 갈등은 지난 13일 영풍이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것이 시작이다. 이후 양사는 지분 확보를 위한 ‘쩐의 전쟁’과 비방 여론전을 벌이며 진흙탕 싸움으로 전개 중이다. 영풍과 MBK의 공세에 맞서 고려아연 역시 우호지분 확보에 나서며 경영권 향방은 안갯속이다.
■고려아연·영풍 날선 여론전
24일 고려아연 임직원은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기자회견으로 열고 (주)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에 대해 “약탈적 행위”라며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고려아연 최대주주인 영풍의 장형진 고문을 향해 “투기 자본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노리고 있다”며 “모든 책임이 있다”고 날을 세웠다.
고려아연 이제중 부회장(최고기술책임자·CTO)은 회사 핵심 엔지니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부당함을 국민께 알리고자 한다”며 “피와 땀으로 일궈온 고려아연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그는 특히 영풍의 장형진 고문을 겨냥해 “영풍 석포제련소의 경영 실패로 환경 오염과 중대 재해를 일으켜 국민에게 빚을 졌으면서도 이제 와 기업사냥꾼과 손잡고 고려아연을 노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영풍과 함께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MBK는 이날 반박문에서 “일각에서는 우리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신성장 사업들이 모두 중단될 것 같이 호도하고 있다. 심지어 인수 후 중국에 매각될 것 같이 말한다”며 “근거 없는 억측이며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지배균형 깨지며 ‘헤어질 결심’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회사다. 두 창업주는 1949년 (주)영풍의 모체인 영풍기업사를 합명회사로 공동 창업하고, 25년 후인 1974년 자매회사 고려아연을 설립했다. 핵심인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경영권을, 장씨 일가가 최대주주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양 측은 수십 년간 원료 공동구매와 영업 공동판매 등으로 동행했다. 고려아연은 글로벌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으로 전자, 반도체 등 국내 첨단산업에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공급망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갈등의 발단은 2019년 지배구조 개편부터 시작한다. 정부의 대기업 순환출자 규제 강화로 양 집안이 유지하던 힘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당초 ‘고려아연→서린상사→(주)영풍→고려아연’의 순환출자 고리는 영풍 2세 장형진 고문이 서린상사가 보유한 (주)영풍 지분 10%를 직접 취득하는 방식으로 ‘장형진 →(주)영풍 →고려아연’ 구조로 개편했다. 장씨의 지배구조는 강화됐지만 최씨는 서린상사를 통해 지주회사에 행사하던 영향력을 상실한 셈이다.
그사이 고려아연은 기술고도화로 꾸준히 성장가도를 달렸다. 반면 영풍은 연이은 신사업 실패와 석포제련소의 환경문제와 중대재해 사고 등 잡음이 이어졌다. 특히 영풍이 고려아연에 현금 배당 확대를 요구하며 갈등이 촉발한 것으로 본다. 반면 고려아연은 영풍의 배당금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위해 장기 투자에 집중했다. 2022년 3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취임 전후로 고려아연을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소 등 3대 신사업을 주축으로 한 ‘트로이카 드라이브’로 재편하고 있다.
이날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사업협력을 명분으로 자사주를 한화, LG화학 등과 교환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며 “영풍 측은 이를 경영권 확보를 위한 우호 세력 확보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LG화학과 전구체 생산 공장을 지었고, 한화와 현대차그룹과는 이차전지 소재 확보에 힘을 모으고 있다. 이들 대기업은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