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폐장, EU 등 선도국 ‘잰걸음’…한국은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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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정보문화재단 소통센터
부산서 고준위 방폐물 설명회
“관련 특별법 등 국회 역할 강조”
EU, ‘방폐물 영구처분계획’ 의무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11일 오후 벡스코에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지역 순회설명회'를 개최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11일 오후 벡스코에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지역 순회설명회'를 개최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EU택소노미(Taxonomy·녹색분류체계)’ 등과 맞물려 유럽연합(EU) 국가인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등 선도국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건설에 가속도를 내고 있지만, 세계 5위 수준의 원전 강국인 우리나라는 22대 국회에서 ‘고준위 특별법’이 5건이나 재발의됐지만, 아직 논의 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법안 제정 등 국회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이하 재단)는 1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지역 순회설명회’를 개최했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와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공동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 재단이 주관한 이번 설명회에서는 원전 지역인 부산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질의 응답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11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지역 순회설명회’에서 노동석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11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지역 순회설명회’에서 노동석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노동석 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다른 나라들은 방폐물 처분장 건설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EU 국가들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이유는 신규원전을 녹색에너지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방폐물 처분장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자타가 인정하는 원전 강국(한국)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 관리에 있어서는 많이 늦은 상황으로,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핀란드는 심층처분시설 ‘온칼로’를 건설해 내년 운영을 앞두고 있고, 스웨덴은 포스마크원전 인근에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을 2022년 승인했다. 프랑스와 스위스도 처분장 입지를 결정했다. 체코는 2020년 선정된 4개 후보지 중 하나를 내년에 최종 후보지로 결정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 이그네이스시는 올해 7월 지역 주민 찬성율 77%로 방폐물 처분장 유치 의사를 전달했다. 일본도 홋카이도의 2곳 등 지자체 3곳의 수락을 받아 1단계 조사에 착수했다.

노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2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4기를 건설 중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 4기의 원전을 수출해 성공적으로 완료해 가동 중이고, 체코 원전 프로젝트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선정됐다. 말 그대로 세계 원전 강국이다. 또 3기의 신규원전과 혁신형 소형원전 1기(4개 모듈) 건설 계획이 반영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도 지난달 무사히 마무리됐다 신규 원전의 추진도 곧 본격화될 것”이라며 “하지만 원자력 발전을 하고 난 후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방폐물)의 관리에 대한 대비는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를 위한 특별법이 이번 국회에서 또 다시 재발의됐지만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아직 논의 조차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11일 오후 벡스코에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지역 순회설명회'를 개최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은 11일 오후 벡스코에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지역 순회설명회'를 개최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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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 원자력환경공단 고준위사업본부장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현황 및 특별법 주요내용’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지난 21대 국회에서 4건의 고준위 특별법 발의 및 11차례 소위원회 논의가 있었지만, 국회 임기 종료와 더불어 자동폐기됐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지난 국회에서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국민의힘 김석기·이인선·김성원·정동만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실에서 총 5건의 법안이 발의돼 논의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정재학 방사성폐기물학회장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원칙 및 해외사례’라는 주제발표에서 “지속가능한 방폐물 관리는 전 세계적 이행과제이자 원전 운영국으로서의 책무”라며 “이젠, 지난 반세기 동안 다음 세대에 전가해 왔던 고준위 방폐물 관리 책무에 충실해야 한다. 지난 20년 간 오랜 준비 과정과 공론화를 통한 집단지성의 산물인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제정을 통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이를 통해, 고준 위방폐물과 관련한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미래세대와 환경 보호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원전 수와 사용후핵연료 보관량은 세계 5위 수준이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사용후해연료 총 누적 저장량은 약 1만 9000t(톤), 국민 1인당 관리부담은 약 366g(그램)이다. 앞으로 국내 사용후핵연료 발생량과 저장량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EU는 현재 기술 수준에서 가장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고준위 방폐물 End Point(종점)를 심층처분으로 인정하고, 모든 방폐물의 영구처분까지 고려한 국가계획 수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EU가 확정한 EU택소노미(Taxonomy·녹색분류체계)에서는 원자력의 녹색산업 인정 조건의 하나로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운영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

유엔(UN)은 방폐물 최종처분 방안을 마련해 이행할 것과 함께 방폐물을 최종 처분에 적합한 형태로 안전하게 저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미래세대를 우리세대와 동등하게 보호하고, 방폐물을 발생시킨 우리세대가 최종처분 방안을 마련할 것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EU와 미국은 원전 운영에 따른 책무로 ‘고준위 방폐물 최종 처분을 위한 구체적 계획 수립 또는 장기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규정하고 있다.

정 회장은 “방폐물 심층처분은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고준위 방폐물 최종 관리방안이라는게 국제사회에서 확인됐고, 국내에서도 공론화를 통해 정부정책(기본계획)으로 결정됐다”며 “선도국은 원전 도입 직후부터 고준위 방폐물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30~40년 간 노력으로 하나 둘 가시적 성과를 달성 중인 가운데, 법률 제정 등 입법부(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선도국 경험을 통해 소요기간 단축 가능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수 (재)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장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기술 개발현황 및 계획’이란 주제발표에서 영구 심층처분시설의 안전성으로 △다중 안전보호막 △인공 안전구조물 안전 성능 △지하 500m 암반의 안정성을 강조했다.

김 단장은 “인공 안전구조물은 구리용기 두께 5cm, 벤토나이트 완충재 두께 35cm일 때 완충재가 치밀하여 지하수는 100만년 동안 3cm 침투에 불과하며 구리용기 수명은 100만년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하 500m 암반의 경우 지표 문명문화, 기후변화 등에 영향이 없고, 방사성 물질의 이동성이 지극히 낮다. 지하 암반에서는 지진 등 에너지가 방출되지 않고, 지하로 갈수록 최대지반 가속도의 감쇄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설명회는 대전과 부산에 이어 3차 대구(10월 17일), 4차 서울(10월 24일), 5차 광주(11월 1일) 까지 권역별 총 5개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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