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히어로 그놈의 어정쩡한 은퇴식…‘베놈: 라스트 댄스’ [경건한 주말]
영화 ‘베놈’ 시리즈는 보통의 히어로 영화와는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주인공 베놈의 영웅적이면서도 악당 같은 안티 히어로적 면모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상한 놈’인 베놈은 때에 따라 ‘좋은 놈’이 되기도, ‘나쁜 놈’이 되기도 합니다.
흉포한 외계 기생 생물과 인간 숙주가 한 몸이 되어 빌런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습니다. 국내에서도 시리즈 첫 작품인 ‘베놈’(2018)이 388만 명, 2편인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2021)가 212만 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사실 베놈 시리즈는 흥행 성적에 비해 완성도가 아쉽습니다. 특히 2편은 1편에 비해 스케일이 줄어들고 스토리가 허술해 적잖은 혹평을 받았습니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세 번째 작품 ‘베놈: 라스트 댄스’(이하 ‘베놈 3’)가 팬들의 걱정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이유입니다. 직접 관람한 후기를 전합니다.
영화 ‘베놈: 라스트 댄스’. 소니 픽처스 제공
지난 23일 개봉한 ‘베놈 3’은 속편을 보지 못했다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전작들의 내용과 설정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심비오트’라는 외계 생물은 숙주의 몸에 기생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제목인 베놈은 기자인 에디(톰 하디)의 몸에 기생한 심비오트의 이름입니다.
에디와 베놈은 한 몸이 되어 악당들과 싸우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미운 정이 들긴 했지만, 여전히 ‘환상의 콤비’보다는 ‘환장의 콤비’에 가깝습니다. 본능에 충실하고 참을성 없는 베놈이 가끔 말썽을 부리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도 둘은 의협심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어 위기를 잘 헤쳐 나갑니다.
3편에서는 아주 강력한 빌런이 등장합니다. 심비오트의 창조주이자 파멸의 신인 ‘널’이 베놈을 찾기 위해 불사의 괴생명체인 ‘제노페이지’를 지구로 보냅니다.
한층 확장된 스케일로 돌아온 ‘베놈 3’에서 에디와 베놈은 경찰과 군 특수부대의 추적을 피해 다니는 도망자 신세입니다. 제노페이지를 맞닥뜨리면서 널이 자신들을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둘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입니다.
영화 ‘베놈: 라스트 댄스’. 소니 픽처스 제공
역시 핵심 관람 포인트는 베놈 시리즈 특유의 역동적인 액션입니다. 시각특수효과(VFX)로 구현한 흉포한 생김새의 베놈이 촉수와 주먹을 동원해 펼치는 격투 신이 곳곳에서 이어집니다. 특수부대원들을 상대하는 수중 액션 신이나 제노페이지에 맞서 혈투를 벌이는 장면들 덕에 ‘킬링 타임’ 영화로는 일단 합격입니다. 예고편에 등장한 말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에 기생해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변신한 베놈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클라이맥스인 후반부에는 ‘아이언맨 3’(2013)을 연상시키는 흐름으로 전작들과는 또 다른 맛의 액션을 선보입니다.
시리즈만의 B급 감성을 활용한 유머도 좋았습니다. 앞뒤 재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베놈의 돌발행동이나 영화 속 세상과 현실 세계를 구분하는 ‘제4의 벽’을 넘는 유머가 소소한 웃음을 유발합니다. SF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나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 ‘델마와 루이스’(1991)를 언급하는 대목은 영화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관객을 위한 유머 포인트입니다.
다만 후속작이 전작을 뛰어넘지 못하는 ‘소포모어 징크스’는 이번 작품에서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시리즈 1편의 재미 요소는 인간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베놈의 압도적인 힘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후속작인 2편과 3편 모두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외계 생물체들이 빌런인 만큼, 베놈의 무시무시한 외관에 걸맞은 압도적인 액션 쾌감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영화 ‘베놈: 라스트 댄스’. 소니 픽처스 제공
스토리에서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3편의 연출은 1편과 2편 각본 작업과 제작에 참여했던 켈리 마셀이 맡았습니다. 전작 각본을 쓴 감독이다 보니 전작들의 장단점도 계승했습니다. 둘의 특별한 우정을 강조하는 마무리가 훈훈한 감동을 주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베놈 주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너무 뜬금없고, 이들의 감정선에 좀체 이입하기 어려워 몰입을 방해합니다.
이 밖에도 군데군데 허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베놈이 충동적인 행동으로 위기를 자초하는 대목은 억지스럽고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문자 그대로 ‘라스트 댄스’를 추는 장면이 특히 그렇습니다. 반대로 빌런 측은 수많은 제노페이지를 동원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능력을 제때 활용하지 않는 허술함이 있습니다. 중반부터 에디나 베놈의 죽음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주제를 좀 더 진중하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베놈 3’의 쿠키 영상은 2개입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잠시 내려간 뒤 하나,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완전히 내려간 뒤 하나입니다. 속편을 암시하는 두 번째 쿠키영상이 나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돼 다소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시리즈에 큰 애정이 있는 마니아가 아니라면 건너뛰어도 무방합니다.
영화 ‘베놈: 라스트 댄스’. 소니 픽처스 제공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