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성 보존’ vs ‘노후 시설 개선’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시민공원화 논란
“역사성 보존이냐? 노후 시설 개선이냐?”
경남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이하 유적공원) 리뉴얼 사업을 놓고 찬반이 분분하다. 낡고 식상한 한국전쟁 관련 전시·체험시설을 철거하고 산책로 등 여가시설 중심의 시민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핵심인데, 충분한 시민 여론 수렴이 없었던 데다 자칫 공원이 가진 역사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거제시에 따르면 ‘유적공원 공유재산 취득(출자반환) 동의안’이 최근 시의회 소관 상임위 심사를 통과했다.
취득대상은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소유인 유적공원 토지 6만 7217㎡와 건물 27동이다. 취득가액은 토지 196억 6600만 원, 건물 27억 1300만 원 등 총 223억 7900만 원으로 책정했다. 대금은 그에 상응하는 현금과 현물 출자로 대신한다. 현금은 2025년 30억 원, 2026년 20억 원, 2027년 20억 원씩 투자한다. 현물은 1차로 감정가액 62억 원인 장승포동 552-174번지 일원 부지를 넘긴다. 나머지는 현재 공사가 관리 중인 수협효시공원 소유권을 넘기는 안을 검토 중이다. 동의안이 내달 1일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공사 이사회를 거쳐 소유권이 거제시로 넘어오게 된다.
이는 유적공원 시민공원화를 위한 첫 단추다. 유적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전쟁 포로를 수용하려 설치한 한반도 최대 규모 집단화 시설의 마지막 흔적이다. 휴전협정 직후 폐쇄돼 잔존 건물의 일부만 남았는데, 한국전쟁 참상을 말해주는 역사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1983년 경상남도문화재자료(제99호)로 지정됐다. 이후 거제시가 유적 공원화 사업을 추진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고, 2012년 지방공기업 출범에 앞서 ‘현물 출자’ 방식으로 공사에 소유권을 넘겼다.
한때 지역 대표 관광지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공사 재정으론 노후 시설 개선이나 콘텐츠 확충에 어려움이 많아 경쟁에서 뒤쳐졌다. 이 때문에 유적공원 방문객은 2013년 69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급감해 지난해 20만 명대로 곤두박질쳤다. 반등을 위해선 외부 지원과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지만 지방공기업인 공사는 국·도비 지원 공모에 응모할 수도 없다. 이에 거제시가 소유권을 다시 가져와 각종 공모 사업에 지원, 시민과 관광객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시는 지난해 9월, 리뉴얼 용역까지 마쳤다. 유적박물관을 제외한 노후 시설을 모두 철거한 뒤 공원 전체를 녹지와 산책로, 놀이·여가·휴식시설을 두루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박물관은 최신 시설로 리모델링하거나 자리를 옮겨 신축한다. 추정 사업비는 최소 395억 원에서 최대 632억 원이다.
이를 두고 지역에선 시선이 엇갈린다. 유적공원이 갖는 태생적 한계와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시민공원화가 필요하다는 긍정론과 시민 여론을 더 폭넓게 수렴해 역사적 가치를 보존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신중론이 팽팽하다.
반면 거제시는 시민 설문 결과를 토대로 강행할 태세다. 작년 용역 때 시민 103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선 응답자의 93%가 리뉴얼에 찬성했다. 시민공원화를 바라는 의견도 82% 나왔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낡고 볼거리가 없어 전반적인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역사 관련 콘텐츠를 모두 배제하면 거제포로수용소라는 브랜드 가치는 완전히 사라진다. 유적공원이 갖는 정체성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