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선박등록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선장
선박 국적 부여 기준 소유자 중심 탈피
특별법 통해 외국 배 한국 등록 높이고
부산 해운대에 ‘선박등록특구’ 설치를
이거야말로 신해양 강국으로 가는 길
해양수도 부산에서는 선박 관련 세미나가 많이 개최돼 부산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많은 사람을 불러모은다. 이 세미나들은 선박금융, 조선, 선박 안전, 김 수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그중에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분야가 바로 선박등록 비즈니스이다.
언론에 따르면 라이베리아기국(LISCR)은 지난 10월 22일 부산에서 국내 해운사와 선주사, 선박관리업체, 선급협회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24년 정례 세미나를 개최하고 고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라이베리아기국은 2022년부터 해마다 해사 분야의 거점인 부산에서 정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여기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인 라이베리아가 세계 최대 선박등록국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태어난 곳이나 부모의 혈통에 따라 국적을 취득하게 되는데, 이를 선박에 비유하자면 배가 건조된 곳은 출생지에 해당하고, 배의 소유자는 부모에 해당한다. 그러나 선박등록 비즈니스에서는 이러한 출생지나 소유자의 국적이 선박등록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마다 선박의 국적을 부여하는 기준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선박법 제2조에 따라 한국인이나 한국에 등록된 회사가 소유한 선박에 한해 국적을 부여한다. 미국은 자국에서 건조된 선박에도 국적을 부여하는 등 보다 유연한 기준을 적용한다.
선박은 위험한 바다를 항해해야 해 안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안전한 선박임이 항상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선박과 전혀 무관한 국가에서 선적을 받게 되면 관리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1982년 유엔해양법은 선적을 부여하는 국가와 선박 간에는 일정한 연계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연계로는 소유, 건조지, 선원의 국적 등이 인정된다.
라이베리아, 파나마, 마셜제도는 편의치적선을 허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많은 선박들이 이들 국가의 주소지에 서류상으로만 회사를 설립해 이를 근거로 선적을 얻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소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전 세계 상선대의 60% 이상이 편의치적국에 등록돼 있다. 국제사회는 유엔해양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논란을 뒤로하고, 안전 문제는 항만국 통제와 ISM코드(국제안전관리규약) 등을 통해 해결해 왔다. 편의치적선은 타국의 선원 승선으로 인한 인건비 절약, 면세 혜택, 금융 제공자 보호, 등록·등기·선급 업무의 창구 단일화 서비스 제공 등의 장점이 있다.
실제 선주가 있는 국가에서는 선박이 편의치적되어 해외로 빠져나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편의치적이 주는 혜택을 가지는 특별한 등록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영국의 맨섬 등록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는 영국의 영토 안에서 특별한 법적 효과가 있는 등록제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 등록은 그대로 두고 부가적으로 한국에 국제선박으로 등록하도록 하는 국제선박등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라이베리아에 등록된 선박의 소유자가 다시 대한민국의 국제선박에 등록하는 방식이다. 원래 목적은 한국 선적의 선박도 국제선박등록으로 등록하게 해 다양한 혜택을 주고 외국으로 이적하지 못하게 함에 있었다. 이 경우 원 등록은 파나마에 있더라도 부가 등록은 한국의 국제선박으로 등록된다.
실제로는 자국민이 소유자이면서 등록을 외국에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타개하고 안전에 대해 자국법을 적용하기 위해 싱가포르, 독일, 영국, 홍콩 등의 국가에서는 나용선(선체용선) 등록제도를 도입해 운영한다. 이 제도는 실제 소유자가 서류상 소유자로부터 선박을 나용선해 자신의 선박과 관련을 맺는 방식으로, 선박을 빌려온 사람들도 자국에 등록을 허용한다. 이 경우 원 등록은 일시 정지되고 선박 안전과 관련해서는 나용선 등록 국가의 법이 적용되며, 소유권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원 등록에 의한다.
우리나라가 등록 선박 숫자로 세계 1위가 되는 길이 있다. 첫째, 선박법을 개정해 대한민국에서 건조된 선박에 한국 깃발을 달아주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취하고 있는 제도다. 전 세계 상선대의 3분의 1은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건조한 배들이다. 외국 선주들이 'K등록'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편의치적국이 제공하는 편의와 버금가는 효과가 있는 특별법을 만들어 우리 선박은 물론이고 외국 선박의 한국 등록을 활성화할 수 있다. 요컨대 부산 해운대에 선박등록특구를 두고 그 법률에 따라 금융 제공자도 선박우선특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나용선 등록을 허용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 등록된 선박은 안전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검사를 받게 되며, 이를 대행하는 한국선급에 가입하는 선박의 숫자가 대폭 늘어날 수 있다. 이거야말로 우리나라가 신해양 강국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