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인들 '입양정보 비공개' 위헌 묻는다 [귀향, 입양인이 돌아온다]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뿌리에 대한 권리' 침해 주장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도 제약
친생부모 동의해야 공개 가능
의사 확인 절차도 소극적 진행
해외 입양인들이 친생부모 정보 공개를 어렵게 하는 현행법(부산일보 11월 4일 자 8면 보도)에 대해 위헌 여부를 묻는다. 친생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입양인들을 돕지 않는 현행법이 ‘뿌리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양인 알 권리 법률대리인단은 입양특례법 제36조 제2항과 제3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고 28일 밝혔다. 대리인단은 해당 조항들이 입양인의 기본권인 ‘뿌리에 대한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봤다. 이 조항이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취지다.
입양특례법 제36조 제2항은 입양인의 친생부모 정보에 대해 친생부모의 명시적인 동의 의사가 확인돼야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친생부모의 개인 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동의 없이 그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는 법 조항이다.
동의 의사 확인 절차 역시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입양인이 정보 공개를 청구하면 아동권리보장원은 친생부모에게 등기우편을 발송해 동의 여부를 묻는다. 그러나 해당 주소지는 수십 년 전 입양 기록에 남아있던 것이어서 친생부모가 그곳에 살 가능성이 적고, 확인이 안 되는 경우 추가 조치도 이뤄지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친생부모 동의를 얻어낼 확률은 매우 적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입양인의 전체 청구건 중 친생부모가 정보 공개에 동의한 경우는 1000건(16.4%)에 불과했다. 해외입양인들의 ‘뿌리에 대한 권리’는 뒷전이 된 셈이다.
제3항은 입양인의 친생부모가 사망이나 그 밖의 사유로 입양정보 공개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도 비공개 원칙을 지키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의료상 목적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공개할 수 있다. 대리인단은 이 조항 역시 입양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제약한다고 봤다.
중년이 된 입양인들에게 뿌리 찾기는 일상을 유지하려는 현재진행형 몸부림이다. 1970~1980년대 한국은 20만여 명의 아이들을 해외로 떠나보냈다. 40~50년이 흐른 지금 해외 입양인들이 뿌리를 찾아 나선 이유는 모두 비슷하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태어나 보낸 3~4년은 평생 안고 가는 구멍이다. 입양인들은 뿌리를 모른 채 한 사람으로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호소했다.
대리인단 역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에서 ‘뿌리에 대한 권리’ 침해를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뿌리에 대한 권리’는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제10조), 행복추구권(제10조), 사생활의 자유(제17조), 가족생활 보장(제36조 제1항) 등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독자적인 기본권이라 주장했다.
해외에선 법을 통해 입양인들의 ‘뿌리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대리인단에 따르면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아일랜드 등은 입양 정보 공개 과정에서 친생부모의 동의를 별도로 요구하지 않는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은 동의 없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비공개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대리인단은 “해외 입양인 친생부모는 80대를 훌쩍 넘기거나 이미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며 “입양특례법 조항의 위헌성이 이번 헌법재판을 통해 제거돼야 한다. 입양인들이 친생부모를 만나고 자신의 기원에 대한 진실을 확인할 기회를 보장받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