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배구 영화 ‘1승’, 랠리 시퀀스 ‘한 방’은 있지만… [경건한 주말]
영화보다 영화 같은 요즘입니다. 한편으론 영화가 끼치는 영향력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영화 ‘서울의 봄’(2023)을 떠올렸으니까요.
세상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극장은 돌아갔습니다.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1승’은 확실한 매력 포인트가 있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관람한 후기를 전합니다.
영화 '1승'. 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드 제공
영화 ‘1승’은 시사회에서 꽤나 호평을 받았습니다. 언론 기사와 블로거 후기 등을 읽어 보면 그동안의 뻔한 스포츠 영화와는 다르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기자가 본 ‘1승’은 기존의 한국 스포츠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최근 한국 스포츠 영화는 뻔한 플롯과 구시대적 연출로 관객들에게 외면받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드림’(2023)입니다. 박서준과 아이유라는 스타 출연진에 ‘극한 직업’(2019)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실화 바탕 축구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개봉 후에는 처참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문제는 스포츠 영화의 플롯이 너무 뻔하다는 겁니다. 오합지졸 선수와 초짜 감독이 모여 성장과 분열을 반복하다 결국 의기투합해 강적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따내는 ‘언더독의 반란’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이 과정에서 강박적으로 콩트식 유머를 욱여넣고, 결말에서 신파로 억지 감동을 유도합니다. 아쉽게도 신연식 감독의 신작 ‘1승’은 이런 기존 스포츠 영화들의 단점을 어느 정도 답습했습니다.
영화 '1승'. 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드 제공
전형적인 캐릭터, 부족한 개연성…아쉬움 남는 완성도
영화 시놉시스는 간단합니다. 프로 여자배구 만년 최하위 팀인 ‘핑크스톰’이 새 감독과 구단주를 만난 뒤 단 한 번의 1승을 위해 분투한다는 내용입니다.
실망감은 영화 초반부터 몰려옵니다. 그동안 봐 온 스포츠 영화와 다를 바 없이 한없이 가벼운 분위기와 틀에 박힌 캐릭터의 향연입니다. 해체 직전인 ‘핑크스톰’의 새 감독으로 부임한 배구선수 출신 우진(송강호)은 전형적인 실패자, 속물 캐릭터입니다. 나름의 아픈 사연으로 프로 데뷔에 실패했고, 파산과 이혼 등 여러 실패를 겪었습니다. 현실주의자인 우진은 신임 감독이 되고도 팀에 대한 애정이나 승리를 향한 열정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적당히 시간만 보내다가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대학 배구팀 감독직을 맡을 생각 뿐입니다.
새로운 구단주 정원(박정민)도 판에 박힌 캐릭터입니다. 전형적인 ‘철없는 재벌 2세’인 정원은 구단을 인수하긴 했지만 팀의 성적보다는 화제 몰이에 집중합니다. ‘핑크스톰’이 시즌 중 단 1승이라도 거두면 추첨을 통해 총 20억 원을 나눠 주겠다는 자극적인 공약을 내걸어 비싼 시즌권을 완판합니다.
잘 나가던 팀도 무너질 상황이니, 만년 꼴찌였던 ‘핑크스톰’의 성적은 뻔합니다. 무기력한 패배를 거듭하고, 선수단에 불화가 번지고, 팬들의 비난이 폭발하는 삼중고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거듭된 패배가 우진의 승부욕을 자극합니다. 승리를 향한 갈망이 생긴 우진은 리더십을 발휘, 팀을 결속해 1승을 향해 달려갑니다.
영화 '1승'. 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드 제공
제일 아쉬웠던 점은 개연성입니다. 전체적으로 ‘왜’가 빠져 있습니다. 핵심 인물인 우진이 왜 갑자기 승부에 집착하게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철없는 속물인 구단주 정원 역시 왜 ‘진심 모드’로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설정’만 있고 설정을 설득할 서사가 너무 얕습니다.
선수단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 설정은 넘쳐 납니다. 성격이 드세 ‘깡패’로 불리는 선수, 시도 때도 없이 클럽을 들락거리는 나이 많은 리더, 6년 동안 한 번도 출전을 못 했지만 뒤에선 성실한 선수, 선수들과 불화로 따돌림을 당하는 선수…. 그러나 이런 설정들을 늘어놓기만 하고 제대로 활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깡패’ 선수는 가끔 욱하는 모습을 보여 줄 뿐, 막상 그리 큰 말썽을 일으키진 않습니다. 오랜 기간 따돌림을 당하던 선수가 다른 선수들과 화해하게 되는 과정도 급작스럽습니다. 캐릭터와 설정에 일관성도 개연성도 부족합니다.
‘급발진’ 잦은 연출 작위적이지만…배구 랠리 시퀀스는 눈 호강
극 중 상황이나 인물의 심경 변화도 갑작스럽습니다. 분노한 팬들이 감독 한 마디에 갑자기 태도가 바뀌는 등 ‘급발진’의 연속입니다. 현재 상황이나 인물이 느끼는 감정은 혼잣말로 일일이 설명합니다. 이런 작위적 연출로 장면과 장면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고, 마치 콩트의 연속을 보는 듯합니다. 대신 빠른 전개 덕에 늘어진다는 느낌은 덜했습니다.
차별점이 있다면 경기 장면 연출입니다. 배구 경기 재현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시원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힘차게 공을 때리는 스파이크 장면들은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롱테이크로 촬영한 랠리(양 팀이 공을 계속 주고받는 것) 시퀀스는 압권입니다. 신연식 감독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배우들이 사전에 안무처럼 동작을 맞춘 뒤 두 달간 연습했고, 설정해 둔 동선대로만 움직이는 카메라 6대로 촬영해 첫 시도 만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영화 '1승'. 키다리스튜디오, 아티스트유나이티드 제공
승리를 위해 애쓰는 과정에선 나름의 디테일이 엿보였습니다. 포지션과 전술 변화, 데이터 기반 분석 등 여러 실제적인 노력을 통해 경기력이 향상되는 모습은 그저 투지와 기세만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하던 기존 한국 영화들과 다른 점입니다.
배구 팬들에게는 반가울 전현직 배구선수들도 꽤 등장합니다. 배구 황제 김연경도 영화 말미에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코믹 장르다운 유머 포인트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뜬금없는 개그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재미는 있습니다.
음악 활용도 그리 감각적이진 않았습니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 교향곡 25번을 활용한 장면은 좋았지만, 유명 스포츠 영화와 여러 예능에도 등장했던 명곡을 삽입한 클라이맥스 대목에서 이렇다 할 감동이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좋게 말하면 전통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뻔한 클리셰였습니다.
그 밖에도 개연성이나 현실성이 지나치게 부족한 장면들이 있어 몰입이 쉽지 않았습니다. 실관람객들 사이에서도 혹평이 나옵니다. CGV 실관람객 평가에서 비판적인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스토리가 뻔하고 개연성이 부족하며, 연출이 작위적이다’라는 지적입니다.
물론 호평도 있습니다. 개봉 이후 등록된 호평들만 종합해보면 ‘배구 경기 장면 연출이 훌륭했고, 가볍게 킬링타임용이나 가족과 함께 보기에 좋았다’는 평가입니다. 또 실패와 성공, 단점과 장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일부 대사가 인상적이었고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됐다는 평도 있습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