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AI에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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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는 교회에서 신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의식이다. 기독교, 특히 천주교에서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의식 중 하나인데, 최근 스위스의 한 교회에서 AI(인공지능)를 통해 고해성사를 받는 실험이 진행돼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8월 시작된 이 실험은 방문객들이 100개 언어로 소통 가능한 ‘AI 예수’와 대화하며 죄를 고백하도록 했다. 실험은 석 달 가까이 진행되다 중단됐다. 고해성사의 신성함을 훼손했다는 등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AI 예수’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의 한 인터넷 게임 플랫폼에서 ‘AI 예수’가 실시간으로 참가자들의 신앙적 질문에 답하는 방송이 진행됐다. ‘AI 예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설교하는 AI 목사’ 등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AI로 구현된 가상의 교회가 개설돼 상담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기독교에 ‘AI 예수’가 있다면 불교에는 ‘AI 붓다’가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올해 4월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마애부처님 AI’라는 이름의 상담 챗봇을 선보인 데 이어, 8월 부산국제불교박람회에서는 법문 제공 기능까지 갖춘 ‘스님 AI’를 공개했다. 나아가 ‘AI에게도 불성이 존재할까’라는 주제의 논쟁이 불교계 안팎에서 일기도 했다.

종교계의 이런 AI 바람에 대해 “기술과 신앙의 융합”이라는 긍정의 반응도 있지만, 아무래도 경계의 시각이 더 큰 게 사실이다. AI가 종교의 가르침을 잘못 전달해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며, 결국 종교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중국의 장자는 “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없는 곳이 없다. 땅강아지, 잡초, 똥오줌에도 있다”고 답했다. 중국 당나라 때 운문선사는 “어떤 것이 부처인가?”라는 질문에 “똥막대기”라고 일갈했다. 15세기 조선의 유학자 강희안은 “꽃에도 도가 있다”며 “세상 만물 어느 것 하나 지극한 이치를 담고 있지 않은 법이 없다”고 설했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영(靈)은 평화로운 곳이나 절망이 엄습한 곳이나 가리지 않고 임한다고 믿는다.

하찮든 귀하든 사람이 정성을 모으는 그곳에 도가 머물고 진리가 내재하고 구원의 문이 열려 있는 법이다. 꽃에는 꽃의 이치가 있고 똥에는 똥의 도리가 있으며, 개소리도 듣는 이에 따라 법문이요 복음일 수 있다. AI라고 다를 바 없을진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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