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대행, '내란·김건희 특검법' 거부가 능사 아니다
집권 여당 의원까지 찬성표 던져 가결
진상 규명돼야 혼란 수습·국가 정상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양곡관리법,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등 6개 쟁점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입법권 침해”라고 비판하며 탄핵 엄포를 놨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를 벗어나기 어려운 대행 체제인 점을 감안하면 거부권 행사는 예견된 일이었다. 국정 안정이 절박한 시점에 사안 하나하나를 문제 삼아 대행체제를 흔들면 국민 불안감이 커진다. 여소야대 정치 지형 속에 맞이한 비상 시국 아닌가. 원내 1당 민주당이야 말로 국정 혼란 수습에 앞장서야 한다. 탄핵 카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대신 원내 다수당으로서 책임감과 자제력을 보여야 할 때다.
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의 힘자랑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대행 역시 신속한 사태 수습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총리실 주변에서 ‘내란 일반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까지도 거부권을 만지작거리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건 우려스럽다. 12·3 내란 수사와 헌법재판소 심리의 차질 가능성 때문이다. 또 특검까지 거부될 경우 정치적 갈등이 심화될 게 뻔해서다. 앞선 6개 쟁점 법안이 야권 단독으로 통과된 것과 달리 특검법안 표결 때는 국민의힘도 참여했고, 부결 당론에도 불구하고 여당 의원 일부가 찬성표를 던져서 가결됐다. 한 대행이 쟁점 법안과 특검법안을 분리해서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국회는 17일 내란·김 여사 특검법을 법제처에 이송했다. 내란 특검법은 12·3 계엄과 관련한 의혹 일체가 수사 대상이다. 김 여사 특검법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품 가방 수수, 선거 개입, 명태균 관련 사건 등 15가지 의혹을 다루게 된다. 두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시한은 내년 1월 1일이다. 한 대행은 특검 수용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특히 검찰과 경찰, 공수처 등으로 흩어진 수사가 하루빨리 특검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는 점에 사안의 시급성이 있다. 한 대행이 특검을 거부하거나, 시한 끝까지 미루면 수사 본격화가 늦춰지는 셈이고, 수사 기록을 참조하는 헌재 심리도 지연이 불가피하다.
한 권한대행은 국무총리로서 12·3 계엄을 막지 못해 작금의 혼란을 일으킨 책임을 비켜갈 수 없다. 지금이라도 국정 안정과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정 난맥과 대외 신인도 하락 등 작금의 혼란을 끝내려면 윤석열 정부의 각종 의혹과 관련해 하루빨리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란·김 여사 특검법이 공포돼야 한다. 국민 절대 다수의 지지 속에 국회에서 통과된 특검법이 거부될 이유가 없다. 같은 맥락에서 공석의 헌법재판관 임명도 지연해선 안 된다. 국가 정상화가 절체절명의 과제다. 특검을 통해 진상이 규명되지 않으면 논란과 갈등 수습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