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여의도 장갑차맨'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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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한 시국에는 보통 사람들도 비상한 행동으로 사태에 대응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언제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12·3 비상계엄 당시 펼쳐졌던 인상적인 한 장면을 대하면서 불현듯 이 말이 떠올랐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국회로 출동하던 군 장갑차량의 앞을 한 시민이 가로막고 나섰다. 백팩을 맨 청년으로 보이는 이 시민은 육중한 장갑차 앞에서 정면으로 운전석을 쏘듯이 노려보며 도로 한가운데 말뚝처럼 섰다. 청년이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자 주변의 시민들까지 합세했다. 이 영상은 워싱턴포스트(WP)가 촬영하면서 알려졌는데, WP는 “이 시민은 ‘내 시체를 넘어가라!’라고 외쳤다”고 보도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맞은 보통 사람들의 비상한 행동을 보여 주는 여러 상징적인 장면 중에서도 이 모습은 아마 압권으로 꼽히지 않을까 싶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맞서 의회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우리 국민의 시민정신이 별처럼 빛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얼룩덜룩한 위장 색에다 아마도 무장까지 했을 장갑차의 위압적인 모습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듯한 당당함은 애초부터 이 느닷없는 계엄이 성공할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었다는 점을 웅변하는 것 같다.

특히 이 ‘여의도 장갑차맨’의 행동은 1989년 6월 5일 중국 천안문 사태의 상징으로 꼽히는 ‘탱크맨’의 행위와 매우 닮았다. 천안문 탱크맨은 중국 정부가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를 막기 위해 천안문 광장으로 보낸 거대한 탱크 대열을 혼자 맨몸으로 막아선 인물이다. 이 장면은 천안문 광장 인근 호텔에 머물고 있던 외신 기자들에 의해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지금까지 자유와 저항의 불멸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탱크맨의 정체도 오늘날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어 천안문 사태의 실체적 진실과 함께 신비로움에 쌓여 있다.

천안문 탱크맨이나 여의도 장갑차맨이나 모두 역사적 순간을 장식한, 어마어마한 용기의 소유자들일 것이다. 아무나 쉽게 덤빌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까딱하면 목숨마저 잃을 수도 있는 그 용기의 원천은 무엇일까. 아마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신념이 개인적인 무모함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게 했을 것이다. 모름지기 어둠이 짙을수록 촛불의 불빛은 더 도드라지는 법이다. 엄혹했던 비상계엄의 밤, 평범한 시민의 엄청난 용기는 그 음습함을 녹인 한 줄기 빛이었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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