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우리 모두에게 계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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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부산현대미술관 백남준 전시의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작품 모습.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부산현대미술관 백남준 전시의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작품 모습.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지금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백남준아트센터와 공동기획한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 전이 진행 중이다. 미술관 1층에는 백남준 작가의 93년 작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가 전시되고 있는데 13개의 나무, 23개의 모니터가 공존하는 이 작품에는 백남준과 샬롯 무어먼, 백남준의 예술적 스승인 미국의 현대 음악가 케이지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상들이 송출된다. 케이지는 1976년 “새를 위하여”라는 책을 발표하여 그가 생각하는 음악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펼쳐놓은 바 있다. 백남준은 케이지를 일본어로 음차하면 ‘계시’와 같아지는 것에 착안하여 ‘케이지의 숲’을 ‘계시의 숲’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제목을 통해서 백남준은 케이지를 새장에서 자유롭게 풀어주어 신비한 작은 새들이 사는 저 먼 오키나와 북단의 얀바루산 깊은 숲에 놓아준다. 백남준이 왜 얀바루 지역에 대해 언급했는지는 정확히 남아 있지 않지만 얀바루 지역은 땅끝을 의미하는 최북단의 무성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고 날지못하는 희귀 조류인 얀바루쿠이나(흰눈썹뜸부기)가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은 이 고요한 나무 숲을 뚫고 흘러나오는 오키나와의 민요 ‘てぃんさぐぬ花(틴사구누하나,Tinsagu nu Hana, 봉선화꽃)’를 소개하고 싶다.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의 음악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담당했는데 류이치 사카모토는 10대시절부터 백남준과 이우환을 동경했던 경험을 인터뷰에서 종종 밝히고 있다. 존경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가 1984년 발매한 ‘음악도감’이라는 앨범에는 ‘Tribute To N.J.P.(백남준)’이란 곡을 작곡하여 마지막 트랙에 넣기도 했다. ‘틴사구누하나,(봉선화)’는 우리나라의 ‘아리랑’과 같은 오키나와의 유명한 민요이다. 내용은 부모님에 대한 효, 삶에 대한 성실을 담고 있는데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에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1989년에 발표한 ‘Amore / Beauty’ 앨범에 수록된 ‘봉선화’가 담겨있다. 세 개의 현으로만 되어있는 오키나와의 민속악기 산신(三線)의 간명한 연주 속에 누구에게도 상처 준적이 없을 것 같은 코자 미사코의 목소리, 류이치 사카모토의 평온한 신디사이저 연주는 공간에 음악이 차 있지만 고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봉선화 꽃잎은/손톱에 물들이지만/부모님 하신 말씀은/가슴에 물들지. / 하늘 위의 별무리는/센다면 세어지지만/부모님 하신 말씀은/ 셀 수가 없구나. / 밤바다 건너는 배는/북극성에 의지하고/나 낳으신 부모님은/날 의지하시네./옥구슬이라 하여도/갈지 않으면 녹스니/밤낮으로 마음 닦아/세상을 살아라./있어도 기뻐하지 마라/잃어도 한탄하지 마라/사람의 좋고 나쁨은/나중에야 알 수 있다.”

왜 백남준이 류이치 사카모토와 이 작품을 같이 했는지 뚜렷한 계기는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백남준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동양적인 깊이를 가진 음악”으로 평가했으며, 사카모토는 백남준의 작업을 “시대를 앞서간 통찰력의 산물”로 존경했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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