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광장의 여성들
변정희 전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탄핵 집회에 청년여성들 전면 나서
민주주의 새로운 정치 희망이 되다
역사 현장마다 언제나 여성 존재해
개방성 다양성 더욱 확대된 공간
여성 상징적 존재·대상 아닌 주체로
새해 우리 일상 곳곳이 광장 되기를
“세상은 왜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우며 동시에 그토록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가 품고 사는 이 질문을 좋아하는 팟캐스트의 진행자가 인용하였다. 계엄과 탄핵 사태는 일상과 공감을 이야기하는 작은 채널에서도 역사와 정치를 소재로 삼게 한다. 국민들 역시 지난해 12월 3일 이후로 뉴스 채널을 새로고침하며 속보를 속보로 덮는 진풍경 속에서 계엄이라는 초현실적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소화해 보려 애썼다. 한편으로는 응원봉처럼 ‘집에서 가장 밝은 물건’을 들고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을 보며 한강의 그 말을 되새김질하게 된다.
다시 열린 시위 광장을 보며 8년 전의 겨울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또다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라니, 그것도 부정선거 음모론과 계엄군의 국회 난입 등 놀라운 수준의 정치적 퇴보에 의한 결과라는 점에서 절망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민들이 보여 준 창의적이고 평화적 시위 문화의 민주적 성숙함에 전 세계가 놀라기도 했다. 황선우 작가의 표현대로 우리 시대 ‘아침이슬’인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양한 깃발들이 넘쳐났다.
무엇보다 8년 전과 비교하여 1020 혹은 2030 세대 청년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졌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한국기자협회는 탄핵 집회 인원 중 3분의 1이 2030 여성이었다고 전했다. 때문에 많은 언론이나 학자들이 청년여성들을 민주주의 새로운 정치 주체 혹은 희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그동안 주체로 호명되지 않았을 뿐, 언제나 광장에는 여성들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촛불소녀’에서 ‘유모차부대’까지, 동시대의 굵직한 집회의 현장마다 여성들이 가시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8년 사이의 변화는 뚜렷하고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많은 이들의 지적대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서부터 미투운동, 불법 촬영 편파수사 사건, 시도지사 성폭력 사건, 낙태죄 폐지,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등 수없이 많은 여성 이슈가 광장에서 주요한 의제로 다루어졌다. 한국 여성 시위는 1970년대 아이슬란드 여성 총파업이나 폴란드 낙태죄 반대 검은 시위를 떠올리게 했다. 청년여성들을 비롯하여 이들에 연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공약으로 삼으며 반여성적 가치관을 내세운 대통령이 당선되는 등 여러 형태의 백래시도 만만치 않게 일어났지만 입법과 정책 면에서 많은 진전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현장을 돌이켜보면, 집회 현장에서 성희롱과 여성 혐오적인 발언이나 피켓이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남아 있었다. 집회 현장 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유명 가수가 만든 노래 가사가 여성 혐오적이라는 항의를 받아 공연이 취소된 적도 있었다. 지금의 광장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으나, 광장의 개방성과 다양성이 더욱더 확대된 현상을 우리는 마주할 수 있다. 무엇보다 광장에서 단련된 여성들이 더 이상 상징적인 존재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 집회 현장의 이와 같은 변화를 가져 온 원동력이기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탄핵 집회 외에도 남태령, 동덕여대 시위 등 곳곳에서 SNS 소통을 매개로 청년여성의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사회적 기반이나 지위가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SNS에 자주 공유되는 ‘소녀가 왔다’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도 없으면서 위기가 닥치면 떨쳐 일어나는 독특한 유전자를 가진 민중이 화답하여 일어나 싸웠다’는 글귀가 있다. 어떻게 보면, 여성이 가장 민주적, 평화적으로 주체가 되어 머물 수 있는 곳은 아직도 광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는 역설적으로 집, 회사, 정치와 사회 영역 곳곳에서는 좁디좁은 이들의 자리를 상기시킨다. 때문에 청년여성의 적극적 집회 참여는 일상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차별적 현실과 싸우면서 성숙한 시민성을 키워온 결과라는 지적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방성과 다양성이 결국 보편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역사의 여러 국면이 증명해 왔다. 우리의 광장이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장이 된 것은 청년여성들을 비롯하여 많은 주체가 국가적 고통에 함께 슬퍼하는 한편 많은 의제에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어 온 덕분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이 머물 곳이 광장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성이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보다 안전함을 느끼고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집이, 회사가, 정치가, 그리고 일상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