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예술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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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4.0 International license 제공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4.0 International license 제공

2024년 11월 부산의 온도를 기억하는가. 지난해 11월은 예년과 달리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며 겨울의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차갑고 가혹해야 할 겨울이 온화하게 느껴지는 이 모순은 인간과 자연이 맺은 오랜 계약이 이미 무너졌음을 암시한다. 사실 이 계약은 시작부터 모호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 혹은 누가 갑이고 을인지조차 불분명한 이 계약은 명확한 책임과 의무의 명시 없이 암묵적 동의로 시작했고 묵시적 갱신으로 이어져 왔다. 계약의 파기는 단지 한쪽의 과실이 아니라 계약 자체의 불완전함에서 기인한다.

오랜 시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대립으로 그려져 왔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모든 비난과 원망은 (거의) 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러나 이 불완전한 계약 앞에서 이러한 구도는 무너진다. 책임의 무게는 공평하게 나눌 수밖에 없다. 모호한 계약은 역설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같은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혔고 서로를 동등한 위치에서 마주 보게 했다. 동시에 이 상황은 예술의 가치를 축소했다. 왜냐하면 예술은 갈등과 대립이라는 긴장의 구도를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부풀릴 수 있었고 그 존재의 의미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흐의 황량한 들판이나 프리드리히의 안개 낀 산봉우리, 그리고 터너의 거친 폭풍우는 인간과 자연의 갈등을 드러냈다. 이들 작품은 자연의 경이와 인간의 도전을 동시에 포착하며 당대가 맞이한 전환과 변화 속에서 결국 인간이, 앞서 언급한 계약을 파기한 주체일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갈등과 대립이 두드러졌던 이 시기의 예술은 그 갈등과 대립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했고, 시대의 문제를 포착하는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다. 인간 중심적 사고와 자연에 대한 지배적 태도에 균열을 만들며 이를 통해 변화를 촉진했던 당대의 예술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스스로 탁월한 가치를 입증했다.

자연과 마주한 협상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인간과 자연은 이제 대립의 한계를 넘어 다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이때 예술은 어떤 소임을 해야 하나. 계약 파기의 주체를 기필코 찾아내 갈등과 대립을 설정하고 그 설정된 상황을 다시 기록하여 누군가의 반성을 자아내는 반복이 이 상황에서 과연 적합한지에 대한 나의 확신은 점점 희미해진다. 예술은 시대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탁월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다른 영역에 전가해 왔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예술의 본질적 한계를 부각한다. 그리고 2024년은 그 한계가 유난히 강렬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제는 이 한계를 예술의 고유한 특성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2025년 1월 1일을 맞이하는 설렘보다 전과 똑같은 수요일이라는 암울함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끝-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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