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국 정치를 구하는 '블록체인 철학'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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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 경제부 블록체인팀장

금융·물류·의료·커피 산업까지 혁신
분산과 신뢰 바탕으로 새 세상 설계
권력 비대화로 비상계엄·탄핵 사태
국정에도 '탈중앙화' 정신 구현돼야

블록체인 기술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로 먼저 알려졌지만, 그 활용 범위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위변조 방지와 분산 저장의 특성을 통해 금융을 넘어 행정, 의료, 물류, 심지어 커피 산업에서도 혁신을 이끌고 있다. 블록체인이 단순히 기술적 도구를 넘어 사회적 신뢰를 재정립해 더 나은 세상을 설계하는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우리 일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주민등록증 서비스를 도입했다. 기존의 종이 신분증이나 중앙 서버 의존 방식에서 벗어나, 블록체인의 분산 저장 시스템을 통해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QR코드 생성이나 IC 칩 태그 방식으로 간편하게 발급받을 수 있는 이 서비스는 세종시와 경기 고양시 등 9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며,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올해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부산에서 도입된 지역화폐 ‘부산이즈굿 동백전’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시민의 일상 속에 디지털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통합했다. 걷기나 자원봉사와 같은 활동으로 포인트를 적립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이 플랫폼은 거래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한다. 아울러 디지털 시민증 발급, 정책자금 신청 등의 기능도 제공한다. 동백전은 단순한 지역화폐를 넘어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혁신적인 도구로 탈바꿈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부산의료원의 의료정보 플랫폼 ‘메디노미’는 개인 의료 정보의 안전한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환자가 스스로 정보를 선택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한다. 외국인 환자를 위한 외국어 지원과 실시간 대기 시간 관리 시스템은 의료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는 의료 관광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블록체인의 영향은 커피 산업까지 확장되고 있다. 부산 커피 R&D 랩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커피의 원산지, 유통 경로, 품질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소비자는 자신이 마시는 커피가 어떤 경로를 거쳐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는 신뢰성과 정확성을 보장한다. 이는 커피 산업의 디지털화를 앞당기고, 품질 관리와 생산자·소비자 간 신뢰 강화에 기여한다. 아울러 블록체인에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기술까지 접목하면 생두의 화학 성분을 평가하고, 최적화된 로스팅 기술까지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 기반 산업은 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부산시는 지난해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40개 이상의 블록체인 기업을 유치해 500억 원 이상의 투자와 14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또한 신규 고용 효과는 100여 명에 이른다.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탈중앙화’다. 중앙집권적 구조에서 벗어나 분산된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를 관리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철학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부산항의 환적 모니터링 시스템 ‘포트아이’는 이러한 탈중앙화의 장점을 활용해 물류 관리의 투명성을 높였고, 서울 서초구의 ‘서초코인’은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지역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는 정치 분야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논란과 탄핵 사태는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6공화국 헌법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다. 이는 독재자가 다시는 이 땅에 등장하지 못하도록 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선 시민이 피를 흘리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비록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하며 헌법 체계가 일정 부분 작동했음을 보여주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독재의 망령을 다시 불러올 위험을 남겼다.

이는 더 많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시스템의 필요성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국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결과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운영 말이다. 마치 블록체인이 경제와 일상 속에서 신뢰와 분산의 가치를 구현하듯이, 지방분권화된 정치 구조에서도 시민의 주체적 참여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비대한 중앙 권력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우리 정치와 민주주의에도 건강한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시도는 투명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향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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