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주거·이웃·돌봄 3박자 "내 집에서 나이 들고 싶다" ['초고령'지혜, 부산서 찾는다]
['초고령'지혜, 부산서 찾는다] 3. 주거와 돌봄
65세 이상 노인 AIP 욕구 높아
부산형 해비타트 챌린지 성과
노인 친화 구조로 주택을 개조
이웃 연대 강할수록 삶의 질 ↑
정든마을 사업 공동체 조성 기여
방문 간호 등 재가 서비스 확대
고령자의 ‘내 거주지에서 나이 들기’, 이른바 AIP(Aging In Place) 욕구는 높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의 생활환경과 노후생활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응답자의 87.2%가 “현재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답했다. AIP 인프라로는 안정적인 집 안팎의 주거 환경과 지역 내 소통할 수 있는 이웃, 노인돌봄 시설과 서비스 등이 꼽힌다.
■고령자 배리어프리 환경으로
“예전에 욕실에서 움직이기 조심스러웠는데 미끄럼 방지 타일을 깔고는 안심이 됐어요. 센서등도 달아서 깜깜한 저녁에 움직이다 넘어지는 걱정도 덜었어요.”
변재승(72) 씨는 ‘부산형 해비타트 챌린지’ 프로젝트를 통해 최근 낡은 집 내부를 수리했다. 사회복지사의 추천으로 프로젝트에 당선된 변 씨는 “수리 후 집이 생활하기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 됐다”며 만족해 했다.
부산형 해비타트 챌린지는 지난해 부산시가 처음 실시한 고령 친화 사업으로, 민간 기부를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주택을 고령자친화구조로 개조하거나 관련 설비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46곳의 신청을 받아 4곳의 집수리를 마쳤다.
선정된 주택들에는 전동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경사로가 마련되거나 이동에 도움을 주는 안전바, 낙상 방지 조명등 등이 설치됐다. 집수리 후 고령자가 독립적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고신대학교 학생들의 재능기부를 통한 작업치료 프로그램도 사후 병행됐다.
부산시 정태기 사회복지국장은 “부산형 해비타트 챌린지는 어르신들이 익숙한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이라며 “부산시는 올해 총 13곳으로 집수리 대상 주택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역 사회와 연결
이웃과 연대가 강할수록 삶의 질이 높아진다. 부산시는 ‘정든마을’ 사업을 통해 고령자의 사회적 네트워크 강화에 나서고 있다.
정든마을 사업은 노인 인구 20% 이상인 구·군을 중심으로 복지기관의 고령친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1년부터 총 7곳에 사업이 진행됐다. 이들 ‘정든마을’에서는 마을 텃밭이나 사랑방 등 마을공동체 활동 여건을 조성하고, 어르신 인식 개선과 세대통합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지난해 사업에 참여한 문현노인복지관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은 남성 독거 노인의 요리 활동인 ‘한정식’ 프로그램이었다. 남성 독거 노인들에게 요리법을 알려주고, 이들이 만든 요리를 이웃들과 나누는 형태로 진행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곽효성(73) 씨는 “혼자 있다 보니 라면으로 때우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이제 손수 밥을 해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며 “수업 시간 만든 요리를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봉사도 할 수 있어 뿌듯했다”고 전했다.
문현노인복지관 신문기 부장은 “어린이집과 연계한 세대 통합 프로그램이나 한정식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와 적극 소통해서 참여자 만족도가 높았다”며 “시의 예산 지원이 끊어지더라도 인기 프로그램은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쇠해지면 지역이 돕는다
노인들은 건강이 악화한 때에도 요양 병원이나 양로원 등에 입소하기보다 지역사회에 계속 거주하고 싶어 한다.
정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재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집으로 방문해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문 요양과 방문 간호, 일명 ‘노치원’으로 불리는 주야간보호센터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재가서비스의 고도화와 더불어 노화로 인한 기능 장애는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AIP 인프라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부산 금정구 라파엘노인데이케어센터 홍수지 센터장은 “대소변 실수는 노년기에 흔한 일인데 자녀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요양병원이나 시설 입소부터 알아본다”며 “노화에 대해 자녀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치매 인구가 늘면서 마을 전체를 치매 환자에게 안전한 환경으로 만드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부산시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 전역에 총 40개의 치매안심마을을 선정했다. 지역별 치매안심센터를 중심으로 지역 내 치매에 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산시 치매안심마을과는 별도로 지역 사회가 자체적으로 나서 치매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곳도 있다. 부산 금정구 남산동 일대는 금정구노인복지관을 비롯해 남산동행정복지센터, 대한노인회 금정구지회, 부산가톨릭대학교 노인복지보건학과 등 여러 기관이 공동으로 치매친화 지역 만들기 사업에 참여하는 ‘다원네트워크’가 조성되어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치매에 관한 교육을 받고 치매 어르신과 정기적으로 만남 활동을 하는 ‘기억채움동행인’ 이웃이 지역에 포진되어 있다. 금정노인복지관 정수경 관장은 “선언적인 차원을 넘어 실질적으로 치매 어르신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관련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
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