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법의 빈틈을 메우는 것은 사람의 사랑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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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 천수이

변호사 뒤에 붙은 사회복지사라는 타이틀에 먼저 눈이 갔다. 천수이 변호사는 가난이 누구보다 싫어서 돈 잘 버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정작 변호사가 되어서는 취약 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 상담 자리를 택한다. 하지만 그 자리가 구청 3층 복도 화장실 앞 한 평짜리일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는 그곳에서 682일 동안 2000여 명의 의뢰인과 만난 이야기다.

초짜 시절의 천 변호사는 혹시 내일 찾아오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어쩌나 걱정하며 잠들고, 이게 과연 법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넋두리인지 모를 사연에도 귀 기울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답변 자판기’가 아니라, 함께 맞장구치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단다. 그는 “법 또한 완벽하지 않고, 법의 이성에 빈틈이 있으면,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사람의 사랑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운 특별한 이야기, 알고 보면 다른 듯 닮은 우리의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모아서 이 책에 담았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도 이미 세상은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뜰 준비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책이 나온 배경에는 먼저 달동네에서 낳아 기르며, ‘더불어 함께’라는 신념 아래 빈민운동에 앞장섰던 부모님이 있었다. 그리고 기막히고 억울한 사연을 접하며 저 또한 달라졌다.

천 변호사는 지금도 틈틈이 마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인권 자문, 스토킹 범죄 피해자 등을 위한 법률 지원을 하며 지내고 있단다. 은유 작가는 “이 책은 드라마에도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가진 힘을 보여 준다”라고 추천의 말을 썼다. 천수이 지음/부키/292쪽/1만 8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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