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유물의 말씀
김정화 수필가
드디어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일본에서 환수한 이 유물은 13세기에 제작된 고려 나전칠기로써 그전까지도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 가을, 유물이 처음 공개되던 날은 매스컴에 떠들썩하게 귀환 보고를 하였고 얼마 후에는 특별전까지 열어 대중에게도 얼굴을 알렸다.
전시회에 다녀온 자들은 한결같이 800년을 거슬러 맞닥뜨린 공예품에 찬탄하고 감읍하였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시골집 자개 문갑처럼 빈티지 느낌이 나거나, 선물용품점에서 구매한 화려한 나전 보석함의 문양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방으로 빽빽하게 장식된 국화꽃과 부드럽고도 섬세한 넝쿨무늬가 알싸한 향을 뿜어내는 것만 같아서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문외한인 내 소견으로도 잠든 고려 나전칠기가 깨어났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고종 황제 투구와 갑옷 등
일본 넘어간 '오구라컬렉션'
도쿄박물관 한국실 절반 넘어
식민지 시대 빼앗겼던 유물
되찾는 방법 정말 없을까
전문가의 해석으로는 침엽수 계통의 나무로 만든 백골 위에 천을 바르고 그 위에 골회(骨灰)를 입혀 자개를 붙인 다음 여러 번 옻칠하여 마감하는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방식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몸체에는 모두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배치하였고 뚜껑 테두리에는 30여 개의 모란넝쿨무늬를 장식했으며 구슬을 꿰맨 듯 연결한 작은 점무늬도 1670개나 된다고 한다. 국화를 둘러싼 촘촘한 이파리들이 놀랄 만큼 정교하다. 도안을 그리고 종잇장 같은 얇은 자개 조각을 따내어 일일이 붙이고 몇 겹의 칠을 하는 동안 흘린 장인의 땀을 생각한다. 과연 나라의 보물로서 손색없는 귀물이다.
그런데 이 유물이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백 년 넘게 잠자고 있었다는 대목이 눈길을 잡는다. 그것은 단박에 서아프리카 베냉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한 편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는 프랑스에 약탈당한 다호메이 유물을 본국으로 귀환시키는 과정을 담았다. 더군다나 26개 반환 유물 중 게조왕 조각상에 목소리를 덧입혀 유물의 시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하는 설정이 독특했다. 어둠 속에서 한 세기가 넘게 갇혀 있던 조각상은 굵직하고도 낮은 그러나 분노와 비장함이 서린 음성으로 “시작과 끝, 꿈속에서 길을 잃고 벽과 하나가 되었다”라고 외쳤다. 나는 그 순간 캄캄한 나무 상자 속에 갇힌 게조왕에 몰입되면서 당연히 고려국의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떠올린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영화 때문인지 주말마다 일 년 동안 줄기차게 다녔던 어느 박물관대학의 학습 때문인지는 알지 못해도 요즈음 처처에 흩어진 유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연산동고분군도 가고 청도 석빙고도 다녀오고 경주 남산의 늠비봉 오층석탑도 보고 포항 칠포리 암각화도 만났다. 그러나 우리 땅에 몸 붙인 유물이야 관심도 갖고 연구도 하지만 타국에 묶여 있는 우리의 문화재는 어찌할 것인가.
무엇보다 일본에 넘어간 ‘오구라컬렉션’을 빼놓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때 전기 사업으로 부를 쌓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조선의 막대한 유물을 도굴과 갈취와 약탈로 밀반출하였다. 반출된 유물은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한국실에만도 진열장의 절반을 넘게 채웠다. 고종황제의 투구와 갑옷, 명성황후가 사용했던 상, 금동반가사유상, 금관총의 유물들, 연산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차양투구, 삼각판병유판갑옷, 철제관모 등이 포함되었다. 그러니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서 돌아온 조선 왕실 도장이나 일본인 개인이 소장하던 얼굴무늬 수막새 등이 환수된 예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몰락한 다호메이왕국의 게조왕이 베냉 국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환하듯, 비참했던 식민지 시대에 오구라에게 빼앗겼던 유물을 되찾는 방법이 정말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