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한다
부산현대미술관 백남준 회고전
국내 최대 규모, 부산 최초 진행
백남준 전 생애 작품 모두 만나
BTS RM, 전시 위해 부산 방문
최근 발표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 주요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명단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한국 작가는 미디어 아트 작가 백남준으로 조사됐다.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구겐하임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20여 곳의 북미 미술관은 235명의 한국 작가 작품 1118점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 중 백남준의 작품은 164점으로, 조사 대상 미술관이 소장한 한국 작가 작품의 14.6%를 차지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백남준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에 부산현대미술관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이자 부산 최초의 백남준 대형 회고전을 연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 1점도 소장하지 못한 부산현대미술관이 무려 160여 점의 작품을 모아 제대로 판을 깔았다. 백남준 작품은 워낙 고가이고 예민한 전자 장비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소장처에선 쉽게 대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산현대미술관이 이 전시를 위해 얼마나 많은 품과 시간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며 동시에 이 전시가 얼마나 귀한 기회인지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미술판에서 “부산현대미술관이 대어를 낚았다”는 말로 이 전시에 대한 놀라움과 반가움을 표현하고 있다. 부산현대미술관 강승완 관장은 “1년 반 정도 준비했다. 기술 미디어와 중심에 있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오래전부터 작품으로 보여준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백남준 사후 한국 미술관급에서 열리는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라고 소개했다.
백남준의 작품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와 공동으로 기획한 이 전시는 백남준 아트센터 외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독일 프랑크푸르트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소장처에서 작품을 빌려 왔다. 물론 개인 소장가의 작품도 일일이 연락해서 가져왔다. 이런 정성 덕분에 작품 외에도 이번 전시에선 사진, 영상, 아카이브 등 작가 백남준에 더불어 인간 백남준을 느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비디오 아트 선구자 백남준의 초기 작품부터 말기의 레이저 작품까지 평생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국내에서 거의 만날 수 없었던 초기 백남준 작품과 ‘로봇 가족: 할아버지’ ‘로봇 가족: 할머니’로 대표되는 1980년대 로봇 가족 시리즈, ‘걸리버’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 ‘108번뇌’ 같이 공간을 압도하는 초대형 작품도 고스란히 부산현대미술관으로 옮겨 왔다.
전시는 1961년 퍼포먼스 비디오 ‘손과 얼굴’로 시작한다. 청년 백남준이 스스로를 예술 작품의 피사체로 다루는 초기작이다. ‘플럭서스 챔피언 콘테스트’는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양동이 주변에서 소변을 보면서 자신의 국가를 부르는 퍼포먼스로, 사회와 예술의 권위에 도전하는 백남준식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백남준이 1964년에 만든 첫 번째 로봇 ‘K-456’도 만날 수 있다. 머리에는 은박지 접시를 쓰고 가슴에는 빙빙 도는 발포 고무를, 손에는 프로펠러를 달았다. 전선이 훤히 보이는 이 로봇은 위태롭게 걷고 입으로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을 재생하고 배변을 하듯 콩을 배출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로봇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데 무려 다섯 명의 기술자가 필요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로봇이라는 점이다. 백남준이 지향하는 ‘기술적인 반(反)기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대미술관 내 영화관에선 백남준의 대표작 비디오 15점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 백남준을 20세기 최초의 디지털 크리에이터로 해석한 다큐멘터리는 무척 흥미롭다. 또한 현대미술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공간에선 8m 높이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가지마다 모니터들이 매달린 작품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가 눈길을 끈다. 명상 음악이 흐르고 나뭇가지마다 설치된 모니터들의 영상은 마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같이 느껴진다. 조금 더 걸어가면, 대형 걸리버 로봇과 그 주위를 둘러싼 18개의 소인국 로봇으로 이루어진 작품 ‘걸리버’를 회전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시 마지막은 2000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백남준이 마지막으로 전시한 레이저 작품 ‘삼원소’와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위해 작가가 특별히 제작한 ‘108번뇌’가 기다리고 있다.
백남준 작품은 심오한 철학과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내용이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해도 이미지 그 자체로도 즐길 수 있다. 특히 로봇과 영상 장비들이 많아 초등학생들조차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유명한 미술 애호가이자 컬렉터인 BTS의 리더 RM이 이 전시를 보기 위해 부산현대미술관을 직접 찾아 전시 인증 사진을 대거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RM의 인증글 덕분에 이 전시는 요즘 주말이면 하루 2000여 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많으며 부산 아미 성지순례 중 한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전시는 무료이며 3월 16일까지 열린다. 월요일 휴관.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