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에 연탄 기부마저 줄어 취약계층 겨울나기 ‘막막’
부산연탄은행 접수된 기부액
전년 동기 대비 25~30% 감소
주 3회 봉사 올해 1회로 줄여
주민 “연탄 파는 곳도 없어 걱정”
지난 14일 한 주민이 부산연탄은행이 배달한 연탄을 옮기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새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삶이 나아져야 새해 분위기라도 나지….”
지난 14일 오전 10시께 찾은 부산의 한 쪽방촌. 신년이 무색하게 이곳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날 부산에는 바람이 강하게 불며 체감온도는 영하로 떨어졌다.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 곳곳엔 연탄이 쌓여있었다. 추위를 막기 위해 피운 연탄으로 요즘 도심에서는 맡기 힘든 연탄 냄새가 진동했다.
연초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취약계층에 대한 온정의 손길 역시 크게 쪼그라드는 분위기다. 특히 연탄 기부마저 얼어붙으며 취약계층의 겨울나기가 힘겨워지고 있다.
홀로 사는 김미영(68) 씨에게 주어진 공간은 3.3㎡ 남짓한 방 한 칸이 전부다. 성인 2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방에는 이불과 옷가지, 살림살이가 가득 놓여 있었다. 김 씨는 아예 가지고 있는 외투들을 옷장 대신 창문에 걸어 놓았다. 그나마 겨울철 냉기를 막을 방법이라고 생각해서다.
한파가 닥쳐올 때면 연탄이 빨리 줄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김 씨는 “요즘은 연탄 피우는 집이 없어 연탄을 파는 곳도 없다. 봉사로 나눠주는 연탄이 다 떨어지면, 연탄을 사러 멀리까지 가야 한다”며 “바람이 들어 연탄이 빨리 타지 않도록 바람구멍을 막아놨다”고 말했다.
이웃 제옥순(70) 씨 방에도 냉기가 돌기는 마찬가지였다. 전기장판 위로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지만, 비닐과 커튼으로 무장했음에도 창문과 벽이 외풍을 막지 못하면서 방안 공기는 몹시 찼다. 제 씨는 “평소 방 1칸을 데우려면 연탄 3장이 필요한데, 요즘 같은 한파엔 5장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나눠줄 연탄이 적은지 연탄을 나눠주는 날짜도 늦어졌다. 나이가 있다 보니 4월까지는 연탄을 피워야 할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산 곳곳에서 살고 있는 취약계층 주민들이 연탄 후원이 큰 폭으로 줄어든 바람에 올겨울을 유독 춥게 보내고 있다. 부산연탄은행은 700여 가구에 연탄을 지원하고 있다. 통계상으로 부산 시내에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400여 가구다. 그런데 경제적 형편 등을 이유로 보일러가 있어도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가 많아 실제 연탄이 필요한 곳은 더 많다는 게 부산연탄은행 측의 설명이다.
연탄 수요는 크지만 나눌 수 있는 연탄은 턱없이 부족하다. 부산연탄은행으로 들어오는 기부금은 지난해 동기 대비 25~30% 줄었다. 특히 올해 들어선 기부가 거의 없어 지난해 12월 후원금으로 연탄 나눔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평소 1주일에 3번 나가던 연탄 나눔 행사도 올해는 일주일에 1번 정도만 열고 있다.
부산연탄은행 강정칠 대표는 “정부 상황도 불확실하고 실물경기도 너무 안 좋으니 시민들의 기부가 움츠러들었다. 연탄 자체가 화석연료라 기업들도 ESG 경영 차원에서 선뜻 기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산에는 여전히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시민들의 온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