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정치의 '집단 극화' 활용법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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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한민국은 경기 침체의 긴 터널을 지나며 우울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베스트 셀러 ‘신경끄기의 기술’의 저자인 마크 맨슨은 지난해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 12월 3일 있었던 비상계엄은 우리를 다시 한번 갈등의 시대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다만 과거와 달리 “내 말만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그릇된 자기 확신이 이제는 집단화되며 더욱 극단주의화 되는 ‘집단 극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는 정치 신념에 경도된 일반인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정치인들이 내뱉은 발언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탄핵 찬성 여부를 떠나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체포 순간에도 200자 원고지 44매에 달하는 분량을 통해 부정선거론을 띄우며 자신의 계엄을 정당화했다. 또다시 대통령 탄핵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단일대오를 지킨 대다수의 보수층 대신 자신의 부정선거 주장에 힘을 보태준 극우 세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권을 탈환하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의 데칼코마니 같다. 자신의 재판은 최대한 늦추면서도 대통령 탄핵은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는 그는 모든 일정의 초점을 대권에 맞추고 있다. 또한 국회 다수석을 무기 삼아 ‘탄핵중독증’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탄핵을 남발하면서 각종 정책 혼선은 물론이고 경제는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으며 본회의장에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른바 개딸, 강성 지지층의 열광을 이끌어냈다.

문제는 집단 극화가 양산하는 수많은 문제에도 정치인들의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검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도 “과대망상”이라 반박한 민주당 전용기 의원, 1980~1990년대 군부 독재 정권 상징인 백골단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청년 조직을 국회에 세워놓고도 ‘해당 단체가 백골단인지 몰랐다’는 국민을 기만하는 취지의 해명을 내놓은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 등이 있는 게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이다.

우리 사회 갈등지수는 수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국가 가운데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이후 또 한 번 열린 광장민주주의지만 성숙한 모습을 보였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극단적 진영 정치가 세계적 추세라고는 하지만, 경이로운 경제 성장과 선진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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