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년대계 교육 현장, 정쟁에 멍들며 혼란스럽다니
‘AI 교과서’ 유보·고교 무상교육법 무산
한 달 앞둔 신학기, 학교·교사들 당혹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교육계의 대형 현안인 ‘AI 교과서’ 유보와 고교 무상교육 국비 지원과 관련한 법안에 최근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3월 신학기를 코앞에 둔 교육 현장이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 14일 고교 무상교육의 국비 지원 기간을 3년 더 연장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데 이어 21일엔 AI 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도 다시 국회로 돌려보냈다. 당장 신학기 개학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일선 학교는 당혹감에 휩싸인 모습이다. 백년대계라는 교육 현안조차 한갓 정쟁거리가 되고 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엊그제 최 대행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AI 교과서는 당분간 ‘교과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최 대행은 교육격차 심화, 균등한 교육 기회 등을 거부권 이유로 들었지만, 앞으로도 AI 교과서가 계속 그 지위를 유지하면서 교육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학부모들의 반발이 여전히 거센 데다 야당도 법안 재의결을 비롯한 가처분 신청 등 후속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교육부와 AI 교과서 발행사 간 구독료 협상마저 한 달째 개점휴업 상태라고 한다. 현장의 담당 교사들 역시 제반 준비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교육부, 여야 간 힘겨루기에 일선 현장만 죽을 맛인 것이다.
고교 무상교육의 국비 지원 문제도 상황은 이와 비슷하다. 다만 여야의 찬반 입장만 AI 교과서 건과 상이할 뿐이다. 정부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고 지방의 무상교육 경비 부담 여력이 충분하다며 국비 지원에 반대한다. 반면 야당과 시도 교육감들은 어려운 재정 상태인 지방에 이를 전가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 방기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일견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논란은 5년 전인 2019년 제도 시행 당시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그때도 재원 부담 주체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했는데, 정치권은 지난 5년간 여기에 손을 놓고 있었다. 불똥이 떨어진 뒤에야 호들갑을 떤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AI 교과서 도입과 고교 무상교육의 국비 연장 지원 문제 모두 단칼로 해결될 수 있는 현안은 절대 아니다. 교육계와 학부모들의 의견 수렴은 물론 국가 재정 상태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매우 고차원적인 정책 사안이다. 정부·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될 사안이 아닌 것이다. 냉정히 생각하면 AI 교과서나 고교 무상교육 모두 미래 세대에겐 매우 현실적이고 중대한 과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거부권을 행사한 최 대행이나 이에 반발하는 야당이 최우선으로 되새겨야 할 부분이다. 여야가 정파적인 관점만 포기한다면 충분히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다. 3월 신학기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