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대한민국 법치, 어디로 가는가
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서울서부지법 폭력, 국가 존립 흔들어
“사법부가 빌미 제공했다”는 논리 횡행
정파 따른 정당성 부여, 법·질서 파괴
보수·진보 떠나 지켜야 할 선 지켜야
헌법재판관, 개인 정치 성향 벗어나
헌법·법률에 따라 독립적 판단하길
변호사들은 법정에 들어갈 때나 재판 종료 후 법정을 나설 때, 문 앞에서 재판부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다. 판사가 보든 안 보든, 이는 사법 정의가 실현되는 공간인 법정에 대한 존엄과 재판부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오래된 관행이다. 때로는 재판 결과가 예상치 못하게 불리하거나 우리의 주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느껴, 재판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도 결국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판단을 존중하고 수용한다. 그것이 법치주의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는 법치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지지자들이 법원을 습격하고 시설을 파괴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마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무법천지의 혼란 속에서 법의 권위는 짓밟혔다. 이에 대해 대법관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 부정”이라며 경고했고, 이러한 극단적 행위가 반복된다면 대한민국의 존립조차 위태로울 것이라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법원 침입 폭동 사태는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그 뒤에 “오죽하면” “그렇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그간 사법부가 그러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야당 대표라고 영장을 기각하던 법원이 왜 대통령에게는 영장을 발부하냐, 누구는 왜 항소심 실형 선고를 하고도 법정구속을 하지 않아, 국회의원까지 하도록 내버려뒀냐, 누구는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도록 재판을 질질 끌어줬냐는 등, 법원의 형평성 없는 판단에 사람들이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말을 덧붙인다. 사법부의 개별 판단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다. 이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는 주제다. 그러나 법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했다고 해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싸움에도 룰이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교묘히 정당성을 부여하고 두둔하는 논리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고, 결국 법과 질서를 무너뜨릴 뿐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여소야대 정국에서 극한의 정치적 대립이 이어졌고, 이는 결국 12월 3일 계엄선포라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치달았다. 그날 밤의 충격과 불안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과 비극적인 참사 속에서 매일 혼란을 겪고 있다.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고 구속 기소되면서, 공수처·경찰·검찰 간의 갈등이 법원 폭동 사태를 거쳐 헌법재판소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 주말 부산역에서는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가 개최되면서 국민도 반으로 나뉘어 극단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고, 음모론까지 더해져 상대 진영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야당 대표의 출마 문제를 둘러싸고, 조기 대선을 추진하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까지 정치적 논란이 번지고 있다. 중심을 잡고 법을 해석해야 할 법조인들이 오히려 정파적 입장에 따라 교과서에서도 보지 못한 논리를 동원하며 아전인수격으로 법 해석을 하는 모습을 보니 앞날이 캄캄하다. 심지어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임명 부작위 사건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다 해도, “권고적 효력”에 불과하다며 최상목 권한대행이 마은혁 후보를 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대로라면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그 어떤 결정을 내놓아도 수긍하고 갈등이 가라앉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는 법의 시간이 왔다. 대한민국은 헌정 국가이자 법치국가다.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며, 이는 그 결정이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사회를 운영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법은 그 자체로 힘이 없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를 지키기로 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법의 권위를 공격하고 헌법재판소의 정당성을 의심하면서 흔들기가 계속된다면, 결국 법치주의는 붕괴하고 법은 정치적 무기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헌정질서의 근본이 위태로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법과 원칙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순간적인 분노와 정파적 이해에 휩쓸려 헌정의 질서를 허물 것인가. 우리가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민주 헌정에 대한 신뢰와 합의를 믿고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그 근본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는 여야, 보수와 진보를 떠나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자,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다. 헌법재판관들은 법대 위의 존엄을 상기하며,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