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이-팔 갈등 해결책… “가자지구 휴양도시 만들겠다”
주민 주변국 영구 이전 첫 거론
두 국가 해법 등 물거품 될 우려
권한 문제·아랍국 반발 등 논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 내 220만 팔레스타인 주민을 주변국에 재정착시키고 이 부지를 장기간 관리, 개발하는 구상을 밝혔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대대로 살아온 터전에서 내쫓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뒤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가자지구를 장악할 것이다. 가자지구를 소유할 것”이라며 “(미국은) 이 지역의 모든 위험한 미폭발 폭탄과 기타 무기를 해체할 책임이 있다. 부지를 평탄하게 하고, 파괴된 건물을 철거하고,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와 주거를 무한정으로 공급하는 경제 발전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자지구의 잠재력은 믿기 어려울 정도”라면서 “가자지구를 개발하면 중동의 리비에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비에라는 프랑스의 칸에서 이탈리아 라스페치아에 이르는 지중해안 관광지대를 뜻한다. 가자지구는 지중해 연안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부터 가자 주민을 제3국으로 이주시키는 방안에 대해 거론해 왔으나 ‘영구적 재정착’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대로 가자지구가 비워질 경우 그간 ‘두 국가 해법’에 따라 추진된 독립국 수립안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요르단과 이집트 등 주변 국가로 영구적으로 이주해야 한다. 이에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물론, 주변 아랍 국가들도 반대하고 있다. 당장 사우디아라비아는 회견 직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없이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을 것이며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방 강대국들이 지역 주민들의 자치권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지도를 다시 그리고 주민들을 이주시킨 시대를 연상시킨다”면서 “지정학적 판도라의 상자를 사실상 다시 열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랍 국가들의 맹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미국을 중동 지역 분쟁에 더 깊이 끌어들일 방안이라고 보도했다.
실현 가능성도 의문이다. 가자 주민의 이주 국가로 거론된 요르단은 과거 중동전쟁 여파로 자국에 유입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왕가 축출과 국왕 암살 등 시도로 내전을 치른 경험이 있다. 이집트 역시 경제 불안이 심각해 대규모 난민을 받기 힘든 실정이다. 무슬림 형제단을 밀어내고 정권을 잡은 압델 파타 엘시시 현 이집트 대통령 입장에선 무슬림 형제단과 뿌리를 공유하는 하마스가 난민들에 섞여 유입되는 것도 우려할 지점이다.
한편, 백악관 풀 기자단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예산 지원에 대해 포괄적으로 재검토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