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세고비아, 기타의 선지자
음악평론가
“기타는 영혼을 잠들게 하고, 우리를 매료시키고, 꿈과 환상의 세계로 손짓하는 악기다… 기타는 인간 창의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증거다.”
1893년 2월 21일,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기타의 선지자’ 안드레스 세고비아(1893~1987)가 태어났다. 세고비아가 태어나면서 기타 역사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가 이룬 업적은 짧게 말할 수 없다. 기타의 주법을 종합 정리하고, 바흐의 ‘샤콘’을 비롯한 고전 명곡들을 기타로 편곡했으며, 방대한 녹음으로도 남겨놓았다. 말년의 세고비아는 자신이 젊어서부터 세워온 다섯 가지 소원에 관해 얘기했다. 세고비아 이전엔 아무도 믿지 않았던 이야기지만, 그 소원은 세고비아 당대에 모두 이루어졌다.
1. 기타가 일상적 놀이를 떠나 예술성을 가진 악기라는 것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지금은 아무도 기타를 민속악기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2. 현대의 진지한 작곡가들에게 기타 곡을 쓰게 만드는 것-세고비아 당시에 로드리고를 비롯하여 카스텔누오보, 퐁세, 빌라-로부스 등이 모두 새로운 기타 곡을 헌정했다. 3. 기타를 선술집에서 꺼내어 유명 콘서트홀로 끌어들이는 것-세고비아는 16세 때 그라나다 예술회관에서 연주회를 했다. 4. 기타에 관한 전문 매체를 가지는 것-이미 1946년 뉴욕에서 ‘기타 리뷰’지가 창간되었다. 5. 세계 주요 음악원에 기타 학과를 개설하는 것-지금은 한국에도 클래식 기타 전공자가 많다.
오늘 소개하는 영상은 세고비아가 직접 연주한 ‘아스투리아스’다. 스페인의 작곡가 이사크 알베니스가 만든 ‘스페인 모음곡’은 총 8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제5곡이 ‘아스투리아스’이고 ‘전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아스투리아스는 스페인 북부의 지방 이름이다. 원곡은 피아노 곡이지만 기타 편곡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영상물은 1976년 세고비아가 알람브라궁전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담아 놓았다. 당시 세고비아의 나이는 83세였다. 그 나이에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후에도 세고비아는 연주를 쉬지 않았다. 세계 일곱 군데 음악원의 강의를 맡았고, 3개 도시의 시민권과 10여 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엔 통산 1000번의 연주회를 돌파했다. 누군가 그에게 연세도 많으신데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세고비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내 생각을 말해줘? 지금 피곤한 것쯤은 상관없어. 왜냐하면 내게는 쉴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있으니까.” 세고비아는 1987년 4월 3일 미국 마이애미 공연을 마친 후 심장에 이상을 느껴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두 달 지난 6월 3일, 96세의 나이에 ‘영원한 시간’ 속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