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사천시 민간 암행어사 11년 만에 ‘폐지’
2014년 첫 시행…시의회 폐지 가결
비리 아닌 민원 제보…제 기능 못해
활동비 지급도 중단…새 시스템 계획
경남 사천시가 공직사회 비리 척결을 위해 만든 민간 암행어사 제도가 시행 11년 만에 폐지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일 사천시·사천시의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열린 제281회 임시회에서 ‘사천시 민간 암행어사 활동 지원 조례 폐지 조례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9년 동안 공무원 비리 근절을 위해 유지해 왔던 민간 암행어사 제도가 공식 폐지됐다.
사천시 민간 암행어사 제도가 만들어진 건 2014년 3월이다. 활동 지원 조례가 제정됐고, 이에 근거해 활동이 이뤄졌다. 사천시 민간 암행어사는 연간 15명 안팎이 선정됐으며, 각 읍면동별 1명 내외로 구성됐다.
이들은 신분을 노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무원의 각종 부조리와 복무 상황 등 제보, 금품·향응 수수와 인허가 부당 처리 제보, 공무원 비위 근절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 제보 등에 대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사천시 민간 암행어사는 기대만큼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실제 운영해 보니 각종 부조리 등 비리 제보는 거의 없었고, 대신 단순 민원과 생활 불편 민원만 이어졌다.
실제 제보 건수를 보면 2018년 36건, 2019년 32건, 2020년 31건이 발생했지만, 공무원 비위에 관련된 제보는 단 1건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민간 암행어사 회의론이 일었고, 결국 기존에 있었던 활동비 ‘월 8만 원’ 지급마저 중단됐다.
이에 민간 암행어사 제도는 더욱 힘을 잃었다. 비리 제보는커녕, 민원 제보 역시 줄어 2021년에는 10건, 2022년 5건, 2023년 8건, 지난해에는 5건에 그쳤다.
사천시 관계자는 “청렴도 제고를 위해 민간 암행어사 제도를 만들었지만, 실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민간인이 공무원 감찰을 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바람에 넘어진 입간판 같은 단순 민원 제보만 들어왔다. 민·관 감찰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이를 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사천시는 민간 암행어사 제도를 폐지하기로 하고 폐지안을 시의회에 상정했다. 시의회 역시 민간 암행어사 무용론에 공감하고 있었던 만큼, 해당 안건을 원안 가결했다.
다만 민간 암행어사 폐지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무원 자체 감찰만으로는 내부 부조리·비리를 감찰하거나 근절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민.관 감찰네트워크가 구축되지 않으면 사천시 종합 청렴도 유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김민규 사천시의원은 “민·관 감찰네트워크가 사라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안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민간 암행어사 폐지안을 보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천시의 의지가 강했고 최대한 빨리 대안을 찾는데 동의하면서 폐지안이 원안 가결됐다”고 설명했다.
사천시는 일단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민간 암행어사 활동 지원 조례안은 폐지하고, 내용을 보완해 명예감사관 등 앞으로 새로운 공직 감찰 방법을 만들 계획이다. 또한 명예감사관 등에 대한 전문 교육 시스템 등을 구축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민간 암행어사는 폐지됐지만 민관 감찰네트워크는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존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 최대한 빨리 새로운 공직 감찰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