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봄바람에 구름도 바다도 가만 있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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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의 '항구'

오지호의 '항구', 1980, 캔버스에 유채, 65.5×90.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지호의 '항구', 1980, 캔버스에 유채, 65.5×90.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874년 4월 프랑스 파리,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와 살롱전에서 낙선한 작가들의 그림을 본 비평가는 그저 ‘인상’이나 그리는 일당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하지만 여기 출품했던 이들이 세계 미술의 역사를 뒤바꿀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인상파(Impressionism)에 대해서 그 비평가가 가졌던 몰이해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있는지 모르겠다.

르네상스 시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공기에 따라 색이 변하는 것을 표현한 이래, 다시 또 햇볕 속에 다양한 색이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던 이들이 인상파였다. 이런 인상파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본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귀국한 고희동(1886~1965)부터이다. 그리고 인상파 이론을 잘 이해하고, 가장 인상파다운 작품을 남긴 작가는 오지호(1905~1982)라고 평가한다.

오지호는 동경미술학교 양화과에 1926년 입학해 인상파를 비롯한 당시 최신 미술 사조를 배우고 1931년 귀국한다. 이후 고등보통학교 시절부터 알았던 김주경(1902~1981) 소개로 개성 송도고보 교사로 1935년부터 재직하며, 송악산 아래 초가에서 1944년까지 살았다. 이 시기 우리나라 최초로 원색판 화집인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1938)을 발간했다. 이 화집에 실린 김주경 작품은 남아있지 않고, 오지호 작품은 ‘시골 소녀’ ‘임금원(林檎園)’ ‘처(妻)의 상(像)’ 세 점만 현재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하면, 인상파는 자연 풍경의 변화를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그 인상을 캔버스에 기록하려 했다. 특히 인상파가 실현하려는 목적과 방법에 가장 잘 상응하는 것은 한반도 자연이라고 한 오지호의 주장을 다음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자연은 원근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고 명징하다. 이 맑은 공기를 통과하는 광선은 물체의 내부까지 투과되어 표면색과 합쳐서 찬란하고 투명한 색조를 드러낸다.”

‘항구’(1980)는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그린 것으로 비록 우리나라 항구를 그린 것은 아니지만, 공기가 어떻게 사물의 형태를 변화시키는지 볼 수 있다. 항구에 거칠게 휘몰아치는 이른 봄바람에 두꺼운 잿빛 구름도 바다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습이다. 항구에 묶인 배는 물론이고 다닥다닥 붙은 몇 층짜리 건물도 바람에 춤추는 듯하다. 비약일지 몰라도 지금 우리들 마음에 빗댈 수 있을 듯하다.

얼마 전 모 공공미술관에서 개최한 오지호 특별전시가 끝났고, 2월에 시작한 ‘인상파’ 전시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인상파는 인상을 느낌으로 그린 화파”라는 오해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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