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카드 꺼내든 정치권, ‘코인러’ 표심 러브콜
국힘,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
민주, 비트코인 외환보유고 추진
조기 대선 앞두고 공론화 열중
제도권 편입·안정성 확보 기대
국가·기관 주도 시장 재편 우려
비트코인으로 표심을 잡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따라 우리나라 정치권도 ‘가상자산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진입할 경우 시장의 신뢰성과 안정성이 강화되지만, 국가나 기관의 주도로 시장이 재편돼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이 축소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2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정치권이 가상자산 정책 공론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효성 여부와 여론 등을 수렴해 향후 조기 대선에서 정책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현재까지 제안된 주요 안건은 국민의힘의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과 더불어민주당의 ‘비트코인 외환보유고 편입’이다.
두 안건의 공통점은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진입한다는 점이다. 다만 방식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 ETF는 전통 증권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거래가 가능한 금융 상품이다.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직접 구매하고 보관할 필요 없이 이용 중인 증권 계좌로 간편히 거래할 수 있다. 이는 가상자산 시장의 접근 문턱을 낮추고, 당국의 규제로 상품이 운용돼 안정성도 확보된다.
하지만 비트코인 현물 ETF는 증권사와 운용사 등 기관의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기관의 막대한 자금이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가상자산거래소 코빗 김민승 리서치센터장은 “비트코인 현물 ETF는 개인투자자보다 기관투자자에게 유리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상자산 데이터 플랫폼 비트보에 따르면 지난 1월 미국 증시 상장 12개 비트코인 현물 ETF 운용자산 총액은 171조 원이다. 미국 금 ETF 운용자산 규모를 뛰어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가상자산 현물 ETF가 도입된다면 코인 시장으로 자본 쏠림 현상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올해 1월 ‘트럼프 랠리’로 가상자산 시장이 ‘불장’을 맞자, 원화마켓(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거래소의 하루 거래대금이 국내 증시를 웃도는 등 제도권 자본시장보다 몸집을 키우기도 했다.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 시에는 머니 무브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보미 연구위원은 “금융회사가 가상자산 현물 ETF를 직접 운용하는 경우 가상자산 현물거래로 인해 국내 자본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더욱 많이 이동할 수 있다”며 “자본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돼 현재 시점에서는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을 통해 얻는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주당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비트코인 전략 비축’ 기조에 발맞춰 비트코인을 외환보유고에 편입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전략 비축자산에 포함하려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발행이 사실상 무제한인 달러 등 법정화폐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
반면 비트코인은 기존 통화와 달리 채굴량이 2100만 개로 제한된 금과 유사한 희소성 자산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 자산에 편입된 금과 함께 비트코인을 경기 불황이나 통화 가치 하락의 방어 수단으로 이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내에서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미국의 비트코인 전략 비축 수단으로는 ‘세금을 통한 직접 매입’과 ‘채굴’이 거론되고 있다. 세금을 통한 비트코인 매입은 친 가상자산 성향의 미국 상원의원 신시아 루미스가 발의한 법안이 유력한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해당 법안은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 100만 개를 매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을 1억 원으로 가정하고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100조 원 규모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 예산(656조 원)의 10%를 훌쩍 넘긴 수준이다.
채굴은 전력 비용이 문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지난해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이 미국 전체 전력 사용량의 최대 2.3%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일부 국가의 총 전력 소비량을 초과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비트코인 보유 비중이 커질 경우, 국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도 2020~2023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휘발유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7억 배럴을 웃돌았던 전략비축유의 절반을 방출한 바 있다. 당초 탈중앙화를 표방해 탄생한 비트코인이 국가 주도로 가격이 조작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