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진화 속도에 당분간 큰 비도 없어 현장선 한숨만…
경남북·울산 10곳 아직도 활활
사망 27명·3만 7000명 대피
축구장 3만 개 넓이 산림 잿더미
지형·기상·연료 세 악조건 구비
불씨 여전 재발화 우려에 살얼음
전국적인 산불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역대 최악의 피해 기록을 연일 갱신하고 있다. 여기에 당분간 비 소식도 없어 현장에서는 절망 섞인 한숨만 나온다.
2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진화 작업이 진행된 지역은 경남 산청·하동을 비롯해 울산 울주 온양, 경북 의성·안동 등 10곳이다. 현재 추정되는 피해 산림 면적은 3만 6000여 ha다. 축구장 3만 여 개 면적의 숲이 재로 변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역대 최악으로 기록됐던 2000년도 동해안 산불의 2만 3794ha를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다.
인명 피해 역시 산림청이 산불 피해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7년 이후 가장 많다. 이날 오전 11시 50분께 경북 영덕군 영덕읍 한 차량에서 산불감시원 A 씨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번 산불 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27일 오후 4시 기준 27명으로 늘었다.
산불로 대피한 인원은 3만 7000명을 넘어섰다. 상당수가 귀가했지만,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도 1만 6700여 명에 달한다.
아직 의성·안동과 산청·하동 등지에서는 산불이 잡힌 것도 아니어서 피해는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진화율은 산청·하동과 울산 울주가 75~85%, 의성·안동이 50% 수준을 오가고 있다. 한 경남도 광역진화대원은 “2023년 합천군 대형 산불도 겪었지만,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분명히 껐다고 생각하고 돌아섰는데 다시 불이 붙는다. 산불 확산 규모나 속도에 비해 인력이나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오후 5시 기준 경북 산불은 서쪽에서 부는 강한 바람을 타고 계속 동쪽으로 번져 경북 영덕군까지 확산했다. 바람 방향이 바뀔 경우 울진 등 동해안을 따라 불길이 북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건 ‘지형’과 ‘기상’, ‘연료’ 등 3가지 악조건이 모두 갖춰졌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서고동저 지형적 특성에 기압 배치까지 맞물려 강한 남서풍이 불었다. 이 바람이 백두대간을 타고 영남권으로 불어오며 고온 건조 현상까지 발생시킨 것이다. 침엽수 비중이 높은 국내 산림 형태도 산불 확산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비 소식에도 27일 강수량은 미미한 수준이어서 더 절망적이다. 전국 곳곳에서 비가 내렸지만 정작 비가 간절했던 산청·하동 산불 현장은 잠잠했다. 다른 산불 현장에 내린 비도 산불을 진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27일을 제외하면 다음 달 초까지 전국적으로 뚜렷한 비 소식이 없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며칠째 계속해서 산불 대비 태세를 운영하고 있다. 주말까지 반납했다. 현재로선 전국적으로 산불이 모두 정리되지 않는다면 안심하기는 힘들 듯하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