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늘어나는 푼돈 도둑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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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 로라 비커 기자가 2021년 강원도 속초에서 현금이 든 지갑을 잃었다 멀쩡히 되찾은 경험을 X(옛 트위터)에 올리면서 한국의 시민 의식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2023년엔 서울 동대문을 관광하던 중국인이 500만 원이 든 가방을 분실했지만 파출소를 거쳐 50분 만에 되찾은 에피소드가 중국 뉴스 포털에 소개돼 “중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폭발적 화제가 됐다.

외국인 눈에 한국인이 물욕에 초탈한 듯 비친 것은 경제 수준과 공중도덕 향상 덕분일 텐데, 실제 우리나라 절도 사건은 줄곧 감소세였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절도 29만 460건은 2021년 16만 6409건으로 42.7%나 줄었다. CCTV 조회, 휴대전화 기지국 접속 기록과 카드 사용 내역까지 감시·추적하는 기술의 발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하지만 2022년 절도 건수가 갑자기 늘어나 18만 2270건을 기록했다. 이 반전을 설명하는 소액 절도 통계가 최근 나와 주목된다. 10만 원 이하 사건만 떼어 보면 2019년 5만 440건에서 지난해 10만 7138건으로 갑절 늘었다. 좀도둑 만연이 전체 절도 건수를 상승 반전시킨 것이다.

무인 점포 확산, 온라인 중고 물품 거래 활성화가 소소한 도둑질의 유혹으로 이끈 측면도 있지만, 생계형 범죄도 덩달아 증가한 점을 놓쳐선 안 된다.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의 50대 여성이 마트에서 소고기 5만 원어치를 훔치다 붙잡혔다. 암 투병 자녀의 병구완을 하면서 무직으로 생활고를 겪다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해 2월 부산의 60대 치매 노인이 배가 고파 마트에서 4950원짜리 고구마 1봉지를 들고 나오다 걸렸다. 죄질이 경미한 생계형 범죄로 형사입건될 경우 경찰 단계에서 즉결심판으로 감경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실직자가 분윳값, 끼니 때문에 범죄자로 전락하던 IMF 구제금융 때의 쓰린 기억이 겹치는데, 바뀐 게 있다면 ‘노인 장발장’의 증가다.

서민의 팍팍한 삶을 드러내는 경고등은 곳곳에 켜져 있다. 은행 신용카드 대출금을 갚지 못한 연체율이 지난 연말 두 달 연속 3.4%였다. 신용카드 대란 막바지인 2005년 이후 최고다. 지난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자영업자가 1년 전에 비해 35% 늘었다. 물론 불경기와 실업, 생활고가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다만 소액 절도 증가세를 허투루 넘겨선 안 된다. 굶주리는 가족을 위해선 못할 짓이 없다는 건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장발장’을 예방하라고 국가와 사회가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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