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디오니소스적 예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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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 '비명을 지르는 교황 두상 습작'(1952). 김종기 제공 베이컨 '비명을 지르는 교황 두상 습작'(1952). 김종기 제공

예술은 합리적인 이상 세계를 보여줄 수도 있고, 반대로 현실 세계의 비합리적인 고통을 드러낼 수도 있다. 니체(1844~1900)에 따르면,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아폴론적인 것’에 반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비합리적, 비이성적, 비논리적 충동을 가리킨다. 디오니소스적 충동이 예술에서 발현될 때는 격렬한 감정의 분출, 생의 격정, 자기 경계의 해체를 드러낸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회화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사례 가운데 여기서는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비명을 지르는 교황 두상 습작’을 들어보자. 그의 작품에 대해 가장 대표적인 비평은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수행한 것이지만, 그의 작품은 신 없는 세계,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 허무주의, 디오니소스적 충동 등 니체의 철학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소지가 많이 있다. 단적으로 말해, 그의 작품에는 니체적 허무주의와 잔혹한 현실에 대한 가차 없는 응시가 드러난다.

니체에 따르면, 디오니소스적 예술을 통해 인간은 삶의 공포와 무의미라는 진실을 응시하게 된다. 베이컨의 ‘교황’도 이와 같은 존재론적 심연을 응시하게 만든다. 베이컨의 이 그림에서 교황은 신의 대리인이 아니라, 두려움과 고통, 존재의 절망에 휩싸인 인간이다. 비명은 언어 이전의 소리이며, 순수한 감정의 표현이다. 뭉크의 ‘절규’가 그의 말처럼 우주의 비명을 듣고 고통에 휩싸여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의 실존적 불안을 시각화한 것이라면, 베이컨의 ‘교황’은 제도적 권위를 상실한 존재의 절규로서 무력감, 공포,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권위의 상징인 교황은 사라지고, 격자로 싸인 투명한 감옥에 갇혀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는 보통의 인간만 남았다.

그러나 베이컨의 그림은 단순한 고통과 비극의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드러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삶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것을 예술적 표현을 통해 긍정하는 태도로 포착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삶의 비극성을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그것을 긍정하는 예술이라 하겠다. 니체는 ‘영원회귀’의 사상에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누구에게나 삶은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디오니소스적 괴물, 기존 가치의 파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 차라투스트라가 가르치는 삶의 방식이다. 현재 상황이 다음에 똑같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그때도 지금과 동일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현재의 삶을 꾸리는 것, 그 속에서 우리는 영원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대들 춤을 멋지게 추는 자들이여, ……그대들 더 높은 인간들이여. 내게 배워라-웃음을!”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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