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세상이 놀랍지 않다면
김대현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공동연구원
세상의 풍파를 너무 겪은 사람은 세상의 재난에 심드렁해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전쟁을 겪은 노인이 세월호를 보는 시선이 때로 그러하다. 저게 저렇게 십년 넘게 노란 배지를 달 일인가. 수십년 전 TV로 방영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81년작 영화 ‘레이더스’ 막바지 시퀀스에는 성궤의 저주를 받아 얼굴이 녹아내리는 특수효과가 나온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돌아가신 할머니는, 그 씬을 보고 한국전쟁기 당신이 목격한 네이팜탄의 위력에 대해 설명했다. 불붙은 고무가 한번 몸에 묻으면 살갗이 녹을 때까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식민 통치와 전쟁으로 나라가 뒤집힌 다음 그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생존과 번영과 근대화를 위해 무엇이라도 내줄 것처럼 살았다. 주위를 돌아보고 무슨 속도로 내닫는지 가늠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적었고, 그 사람들은 주로 처음부터 제 몫을 잃어본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몫을 잃게 된 적잖은 사람들은, 내가 자라면서 보고 들은 저 수준의 삶까지 올라서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온갖 생진을 짜내며 살았다. 그렇게 힘주고 산 결과 나름의 번영이 주어졌지만, 그에 값하는 후과도 잇따랐다. 건강을 잃거나, 참아온 스트레스를 대속할 더 큰 쾌락을 좇다 가산을 탕진하거나, 오래 참은 마음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인터넷과 온라인 세상이 열린 다음 거기서 접하는 남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진절머리가 나는 마음도 따지고 보면 그런 흐름 안에 있다. 한 사람이 몇 사람 몫의 인생을 산 듯이 급변해 온 세상이지만, 나에게 밥 한 번 사주지 않은 세상은 이제 나에게 더 많은 공감과 해량을 요구한다.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 거기서 본 일들에 거듭 놀라고, 그것이 슬프거나 말거나 그 놀라운 상황에 대처하기에 바쁘고, 그 일이 아물기도 전 또 놀라운 일들이 나를 엄습하고, 그런 것 하나하나가 나에게 중요함에도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그걸 꺼내어 말하기를 단념한다. 단념한 마음에는 굳은살이 배긴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 살기 위해 누군가에게 반쯤 내몰린 선택이다.
사람의 속마음은 누구나 곱고 수줍다. 사회가 거칠고 시절이 독해서 그렇지, 처음부터 모질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남과 세상의 일이 언제부턴가 하나도 놀랍지 않다면, 그 마음이 머문 굳은살의 역사와 그 아래의 속살을 한 번쯤 떠올려 보아도 좋다. 사람은 때로 스스로를 아이처럼 돌봐야 하는 때가 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 쏜살처럼 달려오느라 가장 먼저 내팽개친 것들 중 하나다. 자기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돌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