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세 번째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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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자동차와 정보화 고속도로 이어
에너지 고속도로 이슈 급부상 중
수도권 집중 부작용 초래 않아야

19세기 초 영국에서 처음으로 철도가 부설되었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영국에서 초기에 건설된 철도의 속도는 시속 40km 전후로 우편마차보다 겨우 3배 정도밖에 빠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속도에 놀라 기차로 인해 ‘공간과 시간이 소멸되었다’고 흥분했다.

영국에 이어 19세기 중엽에는 전 세계에 걸쳐 철도 건설 바람이 몰아쳤다. 유럽을 달구었던 철도 붐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까지 번졌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철도선은 한꺼번에 2개나 건설되어 서부 개발을 촉진하였다. 이런 철도에 비해 자동차는 한 세대 뒤에 등장하였는데, 중산층의 성장과 더불어 급속히 철도를 대체하였다.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자동차의 효용은 더 높아졌고, 산업적으로도 트럭이 기차를 앞지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물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는 주요 성장지대를 관통하면서 기존에 구축되어 있었던 경부 성장축을 보완하고 강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성장 거점도 강화되었고 특히 물류의 시종착지인 부산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도로에 붙여지는 고속도로라는 말이 다시 소환된 것은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였다. 1997년 말 흔히 IMF 구제금융이라고 부르는 외환위기의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전국 어디서나 빠르게 접근이 가능한 통신망 확충 사업을 추진하였다. 인터넷의 보급과 정보산업의 발전이라는 새로운 추이를 국가발전을 위한 디딤돌로 삼기 위한 시도였다. 이른바 정보 고속도로의 건설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한국보다 인터넷 속도가 빠른 나라는 거의 없었다. 이를 기반으로 전자정부가 가능해졌고, 다양한 신산업 부문에서 창업이 이루어졌다. 비록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과 견주기는 어렵지만 정보산업은 한국이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핵심적인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한류와 K문화도 한국의 탄탄한 정보화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고속도로는 지역에는 냉정하였다. IT와 반도체 등 정보사회의 주요 산업들은 수도권에 집중되었고, 지역은 철저히 외면하였다. 그 결과 지역에서는 인재가 유출되고 지역소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지역들이 소멸 위기에 처하기까지는 두 번째 고속도로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언제부터인가 이야기되던 세 번째 고속도로가 조금씩 다시 부상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인공지능(AI) 분야의 폭발적 성장과 더불어 전력 수요가 일찍이 세계가 예측하지 못한 수준으로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고전력이 필요한 산업지대로 전력을 보내는 에너지 고속도로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의 생산지와 소비지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하는 근본 이유이다. 또한 오래 전에 만들어진 송전시설로는 더 많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보내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새로운 에너지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결국 동·서·남해안 지역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전력 수요가 많은 반도체 산업 등이 기형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으로 보내는 고속도로가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세 번째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에너지 고속도로가 가져올 지역에 대한 영향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돈과 정보에 이어 에너지까지 제한 없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면 산업의 집중은 더욱 심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반면에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있는 곳으로 산업을 보내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는데 이러한 논의는 수많은 균형발전 논의에도 불구하고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원전사태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정치적 오염으로 인해 매우 편협한 사고에 머물러 있다. 신재생 에너지의 경제성이 매우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생산지와 가까운 곳에서 소비되는 방식에 적합한 신재생 에너지가 갖고 있는 지역 친화성을 살릴 기회도 찾지 못하고 있다.

빠르게 대규모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속도로는 그 자체로 효율과 혁신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때로는 지나친 집중의 주범이기도 하다. 일시적으로 집중은 효율적일 수 있지만, 대가 또한 만만치 않다. 고속도로는 오밀조밀 연결된 일반국도와 잘 결합될 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집중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에너지 고속도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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