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머물고 싶은 해양 도시
박지윤 삼미문화재단 이사장
관광객만 기다리는 도시 탈피 위해선
대기업 유치만 기다리는 행정은 곤란
지역기업 잠재력 끌어낼 지원책 절실
5월의 긴 연휴가 끝나면 해양도시 부산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해운대, 광안리, 대대포 등 주요 해수욕장은 분주히 손님맞이를 준비하고 그 시작은 해운대 모래축제가 알린다. 매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해운대 해수욕장은 모래조각 전시 , 시민 참여 대회, 해양환경 교육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행사로 지역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특별한 시간을 만든다.
광안리 해변에서는 청년층을 위한 트렌디한 콘텐츠가 펼쳐진다. 댄스 페스티벌, 드론 나이트, 서핑, 버스킹 등이 이어지며 특히 드론쇼는 수백대의 드론이 음악과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 예술적·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감동적인 순간을 선물한다. 이처럼 해변 일대는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활기를 되찾고 주변 상권에도 긍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대포 해수욕장과 몰운대 해양문화축제는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한 체험 중심 프로그램으로 꾸려진다. 낚시, 생태탐방, 어촌문화 교육등 공공성이 강한 활동들은 다양한 연령층에게 이색적인 경험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해양 콘텐츠 덕분에 부산의 여름철 관광소비 중 상당 부분이 해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과 부산관광공사에 따르면 여름철(7월) 관광소비의 60%가 해양관광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해양수산개발원(KMI)의 조사에 따르면 해양관광객 1인당 연간 지출은 평균 26만 5000원이며, 부산은 전체 해양관광객의 15%를 유치해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는 더욱 인상적 이다. 1회 평균 결제 금액은 내국민의 약 3.8배에 달하고 부산의 외국인 해양관광시장 규모는 3218억 원으로 전체의 44.6%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높은 방문객 수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관광 소비는 상대적으로 낮다. 1인당 평균 소비는 10만 원 이하로 제주도의 15만~20만 원 수준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는 부산의 관광 콘텐츠가 짧은 시간 안에 소화 가능한 구조로 짜여 있어 체류 시간이 짧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 콘텐츠와 지역 인프라를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며, 이 전략의 중심에는 부산의 민간 기업들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특히 부산 향토기업들은 빠른 시장 대응력과 창의적인 기획력,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경쟁력 있는 관광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한 방송사의 환경마라톤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도시와 해안을 연결하는 체류형 관광 콘텐츠로 발전했고, 숙박 음식업계 매출 증대 효과도 낳았다. 또 부산관광의 대표적 인프라인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한 마라톤 대회는 부산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경험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었다. 광안리 회 센터 앞 복합문화공간 ‘밀락더마켓’도 지역 청년들과 협업한 나이트마켓을 통해 부산가면 꼭 가야할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삼진어묵, 송월타올 등 로컬 향토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관광 콘텐츠 개발에 앞장서며 체험형 관광과 지역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여전히 관광소비의 지역 확산은 부족하기만 하다. 2023년 기준 부산의 전체 사업체 수는 약 41만 개인 데 비해 관광 관련 산업은 약 2만 1000개로 5.1%에 불과하고, 이 중 99% 이상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그치고 있다. 관광 소비가 대형 프랜차이즈나 외부 유통망에 집중되는 구조 속에서 지역 기업들이 실질적인 이익을 얻기는 어렵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행정의 적극적인 역할 변화다. 부산이 관광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오기만을 기다리는 도시’에서 벗어나 ‘머물고 싶고 소비하고 싶은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기업을 이해하고 이들을 중심에 둔 전략적 행정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 대기업 유치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부산 기업들이 관광 산업에서 창의성과 실행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적 뒷받침을 강화해야 한다.
해외 도시들도 로컬 중심 관광 전략을 통해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의 카나자와는 지역 공예 중심의 투어 프로그램으로 체류시간을 두 배로 늘렸고, 캐나다 벤쿠버는 300여 개 로컬 상점이 참여한 문화주간을 통해 매출을 27% 증가시켰다.
부산도 이제는 지역만의 독창적인 문화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관광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부산 관광의 미래를 좌우 할 결정적 기회다. 행정은 부산 기업을 소중한 부산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이들과 손잡고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체류형 관광 모델을 조성해야 한다. 머무는 관광, 경험하는 도시, 지역과 상생하는 부산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열쇠는 ‘지역 기업과의 동행’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