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산하 재단 이사장?… 대선 앞두고 ‘정치 중립’ 논란
연제구·금정구·부산진구 등 3곳
단체장이 관내 재단 이사장 겸직
위법 아니지만 예산 등 권한 가져
선거 앞두고 영향력 행사 ‘우려’
정치 중립 위해 법 개정 목소리도
다음 달 3일 대선을 앞두고 부산 지역 기초자치단체 산하 재단의 이사장을 구청장이 겸직하는 것을 두고 정치적 중립 훼손 우려가 제기된다. 법적 문제는 없지만, 선거 국면에서 기초지자체 산하 조직이 간접적으로 선거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4일 부산 16개 구·군에 따르면 연제·금정·부산진구 등 기초지자체 세 곳은 구청장이 관내 산하 재단 이사장을 겸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제구는 상권활성화재단, 금정구와 부산진구는 문화재단 이사장을 각각 겸하고 있다. 이들 재단의 이사장직은 구청장이 당연직으로 맡는 구조다.
임기는 2022년부터 내년 6월까지로 총 4년간 재임하게 된다. 반면 나머지 13개 구·군의 산하 재단이나 자원봉사센터 등은 민간에서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들 재단 세 곳은 법적으로는 독립된 법인이다. 현행법상 기초지자체장이 산하 재단 이사장을 겸직하는 것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공직선거법이나 지방자치법 어디에서도 이를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각 지대에 있다. 기초지자체 산하 재단은 명목상 독립 법인이지만, 예산과 인사 권한이 사실상 지자체에 있어 사실상 직속 기관처럼 움직이는 구조다. 이 때문에 지자체장이 이사장을 겸직할 경우 선거 국면에서 산하 재단 조직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선거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거나 관련 행사 등에 간접적으로 동원될 수 있다.
실제로 지자체장의 영향으로 재단 직원이 선거 운동을 벌여도, 관련자의 고발이나 제보 등 명시적인 법 위반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개입 여부를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문화재단 등 기초지자체 산하 기관의 정치적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이사장으로 위촉하는 것도 이 같은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부산의 한 전직 재단 이사장을 지낸 지역 정가 관계자는 “지자체장이 재단 등을 통해 각종 문화 행사를 직접 챙기다 보면 정치색이 묻어나기 쉽다”며 “의도치 않게 선거 국면에선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해 최근 중앙정부와 일부 광역지자체 차원에서도 유사한 겸직 구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산하에 재단을 둔 기초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겸직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향후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쓰겠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발표한 ‘2024년 자원봉사센터 운영지침’을 통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초지자체장이 산하 재단의 이사장직을 겸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 경기도 역시 각 시·군 산하 기관의 이사장을 민간인으로 선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아직까지 이와 같은 권고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중립 확보를 위해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권일 교수는 “기초지자체장이 이사장직을 겸한 기관은 같은 정당 후보의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리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 구조다”며 “다만 겸직 자체는 위법이 아니기 때문에 사퇴를 강제할 수 없고, 관련 법 개정 등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