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제비집
어릴 적 이맘때만 되면 내가 살던 시골집 처마 밑은 생기가 돌았다. 제비집 덕분이다. 제비가 처마 밑을 날아다니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제비집 한 채가 뚝딱 마련된다. 논흙을 물어다 처마 밑에 묻혀 놓은 것만 같은데 어느 순간인가 집 한 채가 탄생한다. 제비집은 소박하지만 견고하다.
제비가 그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를 때면 여간 소란스럽지 않다. 살아보겠다며 먹이를 받아 먹는 새끼 제비들의 소리에 늘 배고픔을 느꼈다. 낮잠을 방해받거나 제비똥 폭탄을 맞아 짜증을 내면 집안 어른들은 좋은 일이라며 흐뭇해 했다. 기분 좋은 일도 있었다. 이웃에 사는 같은 또래가 찾아와 신기한 듯 제비집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의기양양한 적도 많았다. “우리집엔 제비집 있다!”
제비가 사람이 사는 곳에 둥지를 짓는 것은 탁란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탁란은 어떤 새가 다른 종류의 새의 집에 알을 낳아 대신 품어 기르도록 하는 것으로 뻐꾸기가 대표적이다.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먼저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미처 부화하지 못한 알이나 갓 부화한 새끼들을 밀어내 떨어뜨린다. 그리고는 혼자 게걸스럽게 자신의 새끼로 착각한 다른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 먹는다. TV를 통해 이같은 장면을 봤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탁란은 작은 새들에게 심각한 문제다. 생존을 위해 제비들은 인간 근거지를 선택했을 것이다. 탁란뿐 아니라 천적인 참매, 고양이, 뱀 등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어찌됐건 다른 동물들이 싫어하는 인간에게 자신의 새끼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의탁하고 보호해 달라는 믿음이 제비에게는 있다.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사는 차치하더라도 자신을 보호해주고 살게 해주는 자연을 얼마나 망치고 있는가. 이웃 지역 주민들이 더러운 물을 먹고 알지도 못하는 질병에 죽어나가는 데도 맑은 물을 나눠주지 못하겠단다. 자기 것도 아닌 물인데도 말이다. 인간의 탐욕이란 끝이 없다.
한 번씩 드나드는 촌집에 얼마 전 제비가 집을 지었다. 포란 중이라 조만간 귀엽고 시끄러운 새끼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사실이 조심스러우면서도 즐겁다. 제비집 주변에 얼쩡거리는 고양이들을 쫓아내는 일. 태어날 새끼가 둥지에서 떨어져 다치는 일이 없도록 안전망을 설치하는 일. 믿음의 제비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