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난 현장, 힘든 사람 곁에, 누군가는 반드시 있어야죠” 석갑덕 부산적십자 재난대응봉사회장
27년 동안 기능형 봉사활동 앞장서
재난 대응서 작은 실천 중요성 강조
18년째 의료 자원봉사에도 열성적
“누군가는 꼭 있어야 하잖아요. 힘든 사람 곁에, 가장 먼저.”
지난달 경북 지역에 발생한 대형 산불 현장. 잿더미로 변한 마을에 소방대원들과 함께 가장 먼저 도착한 이들은 대한적십자사 재난대응봉사회였다. 무너진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길. 그 중심엔 석갑덕(67) 부산적십자사 재난대응봉사회장이 있었다.
석 회장은 1998년 부산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미아를 찾기 위해 무전기를 운영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참 든든해 보이더라고요. 저렇게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이후 그는 아마추어 무선기사(HAM) 자격을 취득하며 자연스럽게 재난 현장에서 적십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석 회장은 전국 무선기사 동우회 회원들과 함께 매월 8일 저녁이면 전국 동시 교신을 이어가며 무선통신 전통을 지키고 있다. “그땐 무전기가 곧 생명이었어요. 통신기술과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아마추어 무선은 여전히 재난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교신하며 전국 상황을 실시간 확인 가능한 아마추어 무선은 최후의 보루이자 생명줄이라 할 수 있죠.”
수많은 재난 피해 지역을 누볐지만, 석 회장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곳은 2000년 태풍 글래디스로 인한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된 현장이었다. 실종자 수색이 이어지던 중, 모두가 지쳐 포기하려던 그때였다. “한 명이라도 더 찾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현장에 남았죠. 그러다 흙더미 아래서 아주 희미한 신음 소리를 들었어요.” 그 신음 소리를 놓치지 않은 석 회장이 구조해낸 건 어린 두 남매였다. 형은 구조돼 건강을 회복했지만, 동생은 병원으로 이송됐음에도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살리고 싶었어요. 아직도 그 아이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더 현장을 떠날 수 없죠.”
현재 적십자 부산지사 재난대응봉사회는 약 25명의 전문 자원봉사자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드론, 전기, 통신, 굴삭기 등 재난 대응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를 운영할 수 있는 기술과 자격을 갖춘 ‘기능형 봉사자’들이다. 재난 현장이 어디든 ‘출동’ 신호가 울리면 바로 달려간다.
“회원 대부분이 60대 이상이에요. 그래도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현장을 지키고 있죠. ‘젊은 세대가 함께 해준다면 더 든든할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석 회장은 젊고 활기찬 새로운 봉사회원 영입이 절실함을 표현했다. 그는 또 “재난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 길가의 작은 돌 하나를 치우는 일, 재난 대응은 결국 사람과 마음에서 비롯된다”며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인적으로는 18년째 의료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이동을 돕고, 의료장비를 설치하는 일 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웃을 돌보고 있다. “봉사는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책임이에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결국 나를 성장시키고 내 삶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자신이 선택한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 부산적십자사 재난대응봉사회 석 회장은 오늘도 재난 현장에 나설 준비를 하며, 장비 하나하나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