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법관 증원, 사회적 공론과 숙의 과정 거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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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속도전식 법 개정에 의견 피력
사법부 장악 우려 불식 위한 절차 필요해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 입장해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 입장해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적극 추진 중인 ‘대법관 증원’에 대해 대법원장이 의견을 피력하고 나섰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5일 오전 대법원 청사 출근길에 대법원의 바람직한 개편 방향에 대해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대법원이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뒤 사법개혁을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법원조직법 개정을 추진하는 데 대한 대법원장의 첫 일성이다. 국회 법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전날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사법부 수장인 조 대법원장이 입법의 영역에 대해 운을 떼고 나선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속도전 형식으로 대법관 증원 입법을 하는 데 대한 우려의 의미가 있다. 전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전달한 법원행정처의 의견에도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대법관 수 증원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대법원의 본래 기능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포함됐다. 또 다른 함의는 상고심 재판 지연 문제로 인해 그동안 숱하게 제기돼 왔던 대법관 증원 필요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사법부의 적극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제안이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사법부의 재판 지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법관 증원을 위한 관련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이미 법조계에서조차 대법관 증원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온 이슈다. 2015년엔 대한변호사협회가 설문을 통해 회원 절반 이상이 대법관 증원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고 2년 전엔 대법원이 TF를 구성해 구체적으로 대법관 4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입법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 같은 추세를 잘 알고 있는 조 대법원장으로서는 입법부에 일방적으로 법 개정을 맡기기보다는 사법부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터이다.

일단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를 미루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당 내부적으로도 개정안 내용이 단계적 증원이므로 사법부 의견 반영 필요성을 수긍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을 놓고 국민의힘이 ‘사법부 장악법’이라며 반발하듯 헌법의 근간인 3권분립 훼손 우려를 야기한 점은 못내 아쉽다. 이 대통령 관련 재판 중지 여부 등을 놓고 벌어질 사법 논란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 성격이라는 역풍도 만만찮다.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증진을 위한 입법이 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그 입법 과정까지 엄중한 공론과 숙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상식적인 법 개정은 속도전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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