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핫플] 지친 삶 쓰다듬는 도타운 위안에 몸을 맡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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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주거공간 셀라스
한 건물에 카페·갤러리·살림집 공존
살롱 음악회 정기적 열려 큰 호응
별관 아트숍에선 예술 장터도 시작
일상 안에서 예술을 만나는 기쁨

살림집과 갤러리, 베이커리, 카페, 아트숍, 살롱음악회, 공방이 함께 공존하는 셀라스 건물 전경. 정대현 기자 jhuyn@ 살림집과 갤러리, 베이커리, 카페, 아트숍, 살롱음악회, 공방이 함께 공존하는 셀라스 건물 전경. 정대현 기자 jhuyn@

앞쪽 별관과 뒤쪽 본관의 중간에는 작은 정원이 아름다운 중정이 자리잡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uyn@ 앞쪽 별관과 뒤쪽 본관의 중간에는 작은 정원이 아름다운 중정이 자리잡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uyn@

길 건너편에서 본 셀라스 모습. 앞쪽 건물이 별관이고 뒤쪽 건물이 본관이다. 셀라스 제공 길 건너편에서 본 셀라스 모습. 앞쪽 건물이 별관이고 뒤쪽 건물이 본관이다. 셀라스 제공

영미문학을 전공한 송진아 씨는 어린 시절 이국 땅에서 공부하다는 게 쉽지 않았다. 세계 문화 수도 미국 뉴욕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순간순간 느껴지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날 밤, 무작정 문을 열고 나왔다. 건물 아래로 내려오니, 문 닫힌 1층 갤러리에 조명이 비친 그림 몇 점이 보였다. 한쪽에선 라이브 공연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참 서서 그림을 쳐다봤다. 묘하게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경험했던 힐링과 위로의 공간을 부산에 만들고 싶었다. 금정구 남산동에 있는 복합문화주거공간 셀라스는 이렇게 출발했다.


어린 왕자와 슈만이 만나면…

“여우가 속삭였어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선 언제나 책임이 있는 거야.” 초등학생이 맑은 목소리로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을 읽는다. 뭉글뭉글해진 마음에 레 브와 앙상블의 연주곡이 쑥 들어온다. 40여 명의 관객은 숨소리조차 조심할 정도로 완전히 몰입했다. 연주자들 뒤에는 쏠트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양서윤 작가의 그림이 겹친다. 뱀에게 물려 어린 왕자의 숨이 멈추는 순간, 쇼팽의 장송곡이 기타 선율로 퍼진다. 객석 곳곳에서 조용한 탄식이 나왔고, 자신의 별로 돌아가 꽃을 만났을 것 같은 어린 왕자의 모습은 바흐의 음악으로 전달해 준다.

셀라스 지하 1층 갤러리에서 열린 르 브와 앙상블 공연 모습. 플룻을 부는 소녀가 어린 왕자 대화를 낭독했고 르 브와 앙상블은 내용에 맞는 슈만의 음악으로 연결했다. 김효정 기자 셀라스 지하 1층 갤러리에서 열린 르 브와 앙상블 공연 모습. 플룻을 부는 소녀가 어린 왕자 대화를 낭독했고 르 브와 앙상블은 내용에 맞는 슈만의 음악으로 연결했다. 김효정 기자

르 브와 앙상블 공연은 원래 1회 공연이었으나 순식간에 매진돼 고객의 요청으로 추가 공연을 마련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김효정 기자 르 브와 앙상블 공연은 원래 1회 공연이었으나 순식간에 매진돼 고객의 요청으로 추가 공연을 마련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김효정 기자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후 르 브와 앙상블 멤버들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효정 기자 성공적인 공연을 마친 후 르 브와 앙상블 멤버들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효정 기자

지난 8일 셀라스 지하 1층 쏠트갤러리에서 열린 레 브와 앙상블 정기 공연 현장이다. 원래 오후 5시 공연을 준비했는데 입장권이 순식간에 매진돼 오후 2시 30분 공연을 추가로 열었다. 그 공연마저 매진이다. 2만 원의 입장료가 있는 유료 공연에, 40석 규모지만, 셀라스 공연은 이미 고정 고객이 생길 정도로 입소문이 났다. ‘한여름 밤,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왕자에게, from 슈만’이라는 제목의 이날 공연은 어린이와 청소년,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함께했다.

르 브와 앙상블의 대표이자 첼리스트 이슬 씨는 “프랑스 유학 시절, 모네의 수련 그림 앞에서 밤새도록 여러 앙상블이 연주를 이어갔고 음악과 미술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특별한 추억이 있다”며 “일상에서 문화를 만난다는 셀라스를 발견하고 삶과 음악이 함께 하는 곳이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층 카페에서 연 브런치 콘서트는 참석한 관객 모두가 일일이 감상을 이야기할 정도로 진한 교감을 나누었다. 르 브와 앙상블 멤버인 이슬(첼로), 이효권(플룻), 김명복(비올라), 박정현(기타) 씨는 여러 무대에 섰지만, 이처럼 특별한 느낌은 흔하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이후 올해말까지 르 브와 앙상블의 브런치 콘서트와 정기 공연의 일정이 일사천리로 마련됐다.

공예 작가들의 아트 상품으로 부스를 차린 셀라스 마켓은 많은 이들이 부담 없이 즐겼다. 사진은 규방공예 장숙희 작가의 작품들. 김효정 기자 공예 작가들의 아트 상품으로 부스를 차린 셀라스 마켓은 많은 이들이 부담 없이 즐겼다. 사진은 규방공예 장숙희 작가의 작품들. 김효정 기자

목공예로 만든 생활 소품이 전시된 셀라스 마켓 모습. 김효정 기자 목공예로 만든 생활 소품이 전시된 셀라스 마켓 모습. 김효정 기자

셀라스마켓은 다양한 장르의 공예 작품과 아트 상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김효정 기자 셀라스마켓은 다양한 장르의 공예 작품과 아트 상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김효정 기자

지난 7일과 8일 주말 이틀간 열린 마켓은 셀라스가 처음 한 시도였다. 갤러리에서 전시했던 작가들이 부스를 차려 직접 만든 아트 상품을 선보였다. 규방 공예, 유리 공예, 도자기, 보자기 아트, 플로워아트, 가죽 공예, 목공예 등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이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셀라스 2층 공방에선 낭독음악회 테마인 어린왕자의 내용을 담은 아상블라주(입체 콜라주) 작품 만들기 강좌도 열었다.


갤러리, 카페, 아트숍, 베이커리, 공방, 살림집…

2019년 출발한 셀라스는 도로에 접한 별관과 뒤쪽 본관, 작은 정원인 중정으로 구성돼 있다. 별관에는 초기에 외국 디자인 페어에서 가져온 디자인 상품과 작가들의 그림 액자, 이색적인 생활 소품을 전시, 판매했다.

현재 별관은 디자인 숍에서 확장해 작가들의 아트 상품까지 갖췄다. 아트 브랜드의 팝업도 열리고, 지역 독립서점 크레타와 북 큐레이션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셀라스 별관은 평소 디자인 상품과 작가의 아트 상품, 아트 브랜드의 팝업 행사가 열린다. 정대현 기자 jhuyn@ 셀라스 별관은 평소 디자인 상품과 작가의 아트 상품, 아트 브랜드의 팝업 행사가 열린다. 정대현 기자 jhuyn@

셀라스 지하 1층 쏠트갤러리에선 대표가 직접 발굴한 부산 지역 작가의 기획 전시가 이어진다. 양서윤 작가의 개인전 모습. 정대현 기자 jhuyn@ 셀라스 지하 1층 쏠트갤러리에선 대표가 직접 발굴한 부산 지역 작가의 기획 전시가 이어진다. 양서윤 작가의 개인전 모습. 정대현 기자 jhuyn@

쏠트갤러리에서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양서윤 작가 도슨트 시간. 김효정 기자 쏠트갤러리에서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양서윤 작가 도슨트 시간. 김효정 기자

뒤쪽 본관은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셀라스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공간들이다. 지하 1층 쏠트갤러리는 송 대표가 발굴한 지역 작가들의 기획 전시가 진행된다. 매년 셀라스 공모전을 열어 작가 몇 명에게는 대관료와 책자, 홍보비도 지원한다.

7년 차를 맞아 1층 베이커리와 2층 카페는 완전히 자리 잡았다. 셀라스 단골들은 커피 마시러 들러도 갤러리와 아트숍은 꼭 들러야 할 공간으로 생각한다.

별관 2층과 본관 2층은 복도를 통해 연결돼 있지만, 두 곳의 카페 분위기는 다르다. 별관이 따뜻한 나무 소재와 아기자기한 그림들로 갤러리처럼 꾸몄다면, 본관은 통창에 자연을 가득 담아 전원 카페 같은 분위기다. 본관 2층 창 쪽으로 개관 때부터 넓은 나무로 단을 만들어 공연 무대로 활용할 공간까지 준비했다. 여기서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브런치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2층 중간의 큰 방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콰이어트 룸’으로 꾸몄다. 인근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의 독서실 역할이 되기도 한다. 콰이어트 룸은 특강이 있는 날에는 스튜디오로 변신한다. 자신만의 책 만들기, 퍼스널 컬러 이야기, 스레드 강좌, 유튜브 편집, 아상블라주 체험 등 여러 강좌를 진행했다.

3층은 12채의 원룸, 투룸이 있는 살림집이다. 셀라스 입주민들은 마실 가는 차림으로 계단을 내려오면,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입주민으로 구성된 문화 커뮤니티도 진행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시작하지 못했다. 4층 루프탑 카페는 야외 파티를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셀라스 별관 2층 카페는 갤러리에 드문드문 테이블이 설치된 느낌이 들 정도로 여유롭다. 정대현 기자 jhuyn@ 셀라스 별관 2층 카페는 갤러리에 드문드문 테이블이 설치된 느낌이 들 정도로 여유롭다. 정대현 기자 jhuyn@

본관 2층 카페는 나무단이 길게 있어 브런치 콘서트에선 연주팀의 공연 무대로 변신한다. 정대현 기자 jhuyn@ 본관 2층 카페는 나무단이 길게 있어 브런치 콘서트에선 연주팀의 공연 무대로 변신한다. 정대현 기자 jhuyn@

본관 2층 카페 통창으로 아름드리 큰 나무가 펼쳐져 전원카페 분위기도 낸다. 정대현 기자 jhuyn@ 본관 2층 카페 통창으로 아름드리 큰 나무가 펼쳐져 전원카페 분위기도 낸다. 정대현 기자 jhuyn@

셀라스는 베이커리와 브런치 맛집으로도 미식가들에게 소문이 나기도 했다. 셀라스 제공 셀라스는 베이커리와 브런치 맛집으로도 미식가들에게 소문이 나기도 했다. 셀라스 제공

셀라스 본관 1층은 베이커리를 구입하거나 브런치나 음료를 주문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셀라그래피 활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정대현 기자 jhuyn@ 셀라스 본관 1층은 베이커리를 구입하거나 브런치나 음료를 주문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셀라그래피 활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정대현 기자 jhuyn@

“‘셀라(히브리어)’라는 말은 멈추고 돌아보라는 뜻이 있어요. 바쁜 현대 사회에서 셀라스가 주변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에서 이름을 지었죠.”

이 같은 송 대표의 생각은 몇 년간 진행된 셀라그래피 프로그램에서도 잘 느낄 수 있다. 좋은 문장 혹은 그림이 담긴 종이를 1층에 배치해 두고 고객들이 나머지 공간을 자유롭게 글, 그림으로 채우게 했다. 이 활동을 통해 고객은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고객의 완성품은 1층 셀라스 벽에 장식돼 또 다른 볼거리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새로운 활동지를 만들기 위해 잠시 셀라그래피를 쉬는 중이다.

‘우리 집이 있는 곳에 문화가 있다’는 셀라스의 목표는 현재 진행형이다. 다행히 현장에서 만난 고객 중 우리 동네에 셀라스가 있어 이사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보여줄 것이 많다는 셀라스의 변화가 기대된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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