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덕신공항 팽개치고 무슨 염치로 원전 해체 눈독들이나
현대건설, 1조 원 규모 사업 참여 선언
지역 목소리 외면 이익만 추구 얌체 행보
국내 최초의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해체 승인 여부가 결정되는 26일 부산 기장군 해안가에서 바라본 고리원전 1호기 (왼쪽 두번째) 모습. 김종진 기자 kjj1761@
가덕신공항 공사를 일방적으로 포기한 현대건설이 고리 1호기 해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전 해체라는 고난도 사업에 도전하는 것은 기업의 자유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업이 불과 얼마 전, 가덕신공항이라는 국책사업에서 수의계약까지 체결해 놓고도 최소한의 지반 시추조차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포기했다는 사실이다. 지역과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던진 채 수익성이 보장된 원전 해체 사업에 재빨리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돈 되는 사업에만 골몰하는 대형 건설사의 얌체 행보에 부산 시민과 지역 정치권은 깊은 허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현대건설은 “국내 원전 해체 시장의 키 플레이어로 도약하겠다”며 고리 1호기 해체 수주 의사를 공식화했다. 미국 원전 해체 시장 진출 경험을 앞세워 이번 사업 수주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해체 비용만 1조 700억 원에 이르는 이 사업은 고도의 기술력과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국가적 과업이다. 현대건설은 앞서 벡스코 제3전시장 수주전에도 뛰어든 바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의 등장은 염치 없는 행동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가덕신공항 사업에서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가 아직도 지역사회에 뚜렷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고리 원전 해체 사업에 나서겠다는 것은 지역사회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렵다.
현대건설의 이런 태도에 정부와 부산시가 이 회사를 ‘부정당업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가계약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을 철회하거나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업체는 최대 2년간 입찰 참여가 제한된다. 현재 국토교통부와 조달청도 제재 여부를 법률 검토 중이다. 부산 시민단체 역시 “지역 목소리는 외면하고 자본 이익만 추구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현대건설의 무책임을 질타 중이다. 심지어 여권에서는 특검 도입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고리 1호기 해체는 단순 철거가 아닌 방사성 물질 처리와 주민 불안을 고려해야 하는 고도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지역의 신뢰를 저버린 현대건설이 과연 이 막중한 책임을 감당할 자격이 있는가.
부산 시민은 누가 가덕신공항을 포기했고 누가 지역의 백년대계를 흔들었는지 기억한다. 현대건설은 고리 원전 해체 참여 의사를 밝히기에 앞서 가덕공항과 그 외 지역사업에서의 책임 있는 행보와 진정성 있는 해명부터 내놓아야 한다. 아무리 화려한 기술력과 해외 경력을 내세운다 한들 지역사회의 신뢰 없이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현대건설은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혈세로 추진되는 사업은 결코 기업의 탐욕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다. 고리 1호기 해체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을 무시한 행보는 결국 기업 스스로의 길을 막게 될 것이다. 지역사회는 그들이 과연 공동체 일원의 자격이 있는지 냉정히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