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의 주역] 아나키즘과 주역 마지막 괘 '미제(未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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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단위로 뉴스·정보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거기에 ‘허위 왜곡 콘텐츠’도 횡행합니다. 어지럽고 어렵고 갑갑한 세상. 수천 년간 동양 최고 고전인 ‘주역’으로 한 주를 여는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주역을 시로 풀어낸 김재형 선생이 한 주의 ‘일용할 통찰’을 제시합니다. [편집자 주]


1946년 4월 23일 경남 함양군 안의면 용추사에서 제1회 전국아나키스트대표자대회가 열렸습니다. 해방 이후 아나키즘을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식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렬하게 대립하고 아나키즘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거기에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로 번역돼 국가 건설에 마음을 모으고 있던 시민들에게는 오해받기 쉬웠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저항 과정에서 테러를 중요한 방법으로 사용한 아나키스트 활동가들은 위험한 경계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함양군 안의면 다볕자연학교에서 열린 ‘아나키 안 포럼’. 지난주 함양군 안의면 다볕자연학교에서 열린 ‘아나키 안 포럼’.

아나키즘은 자연스럽게 소수의 사상이 되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80년 전 아나키스트대회가 열렸던 그 공간 경남 함양군 안의면 다볕자연학교에서 ‘아나키 안의 포럼’이 지난 19~20일 열렸습니다. 80년 전의 대회를 다시 잇는다는 생각을 가진 만남이었습니다. 참여한 사람 대부분은 이 모임이 앞으로 매년 이어질 것이라는 데 공감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전세계적인 극우 파시즘의 흐름 때문입니다.

이번 일본 총선도 극우 정당의 약진으로 자민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의힘도 현재 흐름이 그대로 간다면 ‘윤어게인’을 주장하는 극우와 자기 성찰을 하는 보수로 나누어져 분당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겁니다.

이런 세계적인 극우 흐름은 아나키즘을 다시 불러내게 됩니다. 권위를 거부하는 아나키즘은 권위적인 극우 파시즘에 대응하는 힘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거기다 안의(安義)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공간의 힘이 큽니다.

이번 포럼에서 발표한 중요한 원고는 ‘사상계’ 잡지의 지원을 받아서 ‘사상계’ 가을호에도 실립니다.

복간 ‘사상계’는 재창간호와 여름호 두 권을 냈는데 이미 독자가 3천 명을 넘었고 만 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상계 잡지 독자모임 성격도 가질 겁니다.

우리 사회의 의제에서 사라졌던 아나키즘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주역의 64번 째 미제(未濟) 괘는 아나키즘의 정신과 이어집니다. 주역의 마지막 이야기는 63번 기제(旣濟)와 64번 미제(未濟)입니다. 기제(旣濟)는 강을 건넌 사람, 미제(未濟)는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입니다. 완성과 미완성이라고도 읽습니다.

기제 괘는 괘의 구성이 아래부터 양음양음양음(䷾) 으로 이어집니다. 미제 괘는 아래부터 음양음양음양(䷿)입니다.


기제는 모든 효가 자기 자리를 잡고 있는데 미제는 자기 자리가 없습니다.

미제의 중심 가치는 내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상호부조입니다.

雖不當位 剛柔應也(수부당위 강유응야)-내 자리가 없지만 우리는 서로 돕는다.

누군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면 미제는 ‘당신이 저 강을 건너 자리를 잡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미제는 빛의 사람입니다. 깊은 종교적 영성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미제는 강을 건너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이상이 다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의 빛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80년 만에 안의면에서 아나키 포럼이 다시 열린 것은 80년 전 안의에서 꿈을 꾸며 자기 삶의 빛을 실현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제는 이런 빛의 사람들을 군자지광(君子之光)이라고 했습니다. 군자지광을 우리 시대에는 아나키스트라고 번역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彖曰 未濟亨 柔得中也. 小狐汔濟 未出中也. 濡其尾无攸利 不續終也. 雖不當位 剛柔應也.

단왈 미제형 유득중야. 소호흘제 미출중야. 유기미무유리 불속종야. 수부당위 강유응야.


강을 건너지 못했지만 괜찮다. 부드러움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

작은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는데 꼬리를 적셨다는 것은 작은 여우가 아직 물을 다 건너지 못했는데 건넌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여우가 강을 건넜더라도 그곳에 그가 있을 자리는 없다.

여우는 누군가를 돕는 것에 더 마음을 두고 있다.


5효. 六五 貞 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 吉.

육오 정 길 무회 군자지광 유부 길.

象曰 君子之光 其暉吉也.

상왈 군자지광 기휘길야,


후회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군자의 빛(君子之光)이 있다.

나에게는 믿음이 있다. 군자의 빛이 밝고 아름답다.


빛살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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