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스타트업 ‘돈맥’ 뚫는다” 부산 버전 청년창업재단 추진 [스타트업 살리기 프로젝트]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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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금융위원회에 설립 건의
은행권창업재단 ‘디캠프’ 모델
열악한 지역 민간 투자 확대 방안
북항 1부두 ‘창업허브’에 조성
19개 은행 출연 등 4500억 목표
은행권 투자 공감대 형성이 중요

부산시는 ‘지역청년창업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창업허브 부산’이 들어설 부산항 북항 1부두와 지난 5월 문 닫은 ‘디캠프 스타트업 라운지 부산’(아래). 부산일보DB 부산시는 ‘지역청년창업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창업허브 부산’이 들어설 부산항 북항 1부두와 지난 5월 문 닫은 ‘디캠프 스타트업 라운지 부산’(아래). 부산일보DB

지방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부실한 상황에서, 지방에 유동성을 공급할 새로운 주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는 정부의 모태펀드가 지방에 지원되더라도, 현실적으로 수익성 악화의 이유로 민간 투자 결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부산시는 주요 은행이 출연하는 지역 펀드를 만들어 부산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와 은행 측에 제안하고 있다.

■지방엔 새로운 돈줄이 필요하다

부산시는 최근 은행연합회에서 출자한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법인 형태의 ‘지방청년창업재단’ 설립을 은행연합회와 금융위원회에 건의했다. 주요 은행 19개 사가 출연한 금액으로 지역 펀드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시가 참고한 사례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만든 ‘디캠프’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은 2012년 5월, 국내 19개 주요 금융기관이 8450억 원을 출연해 설립한 국내 최대 규모의 창업재단이다.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하지 않았던 2012년에 청년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직간접 투자를 진행하고, 업무 공간, 성장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결과 144개 사에 186억 원의 투자를 진행했으며, 5235억 원의 후속 투자를 유치했다.

부산시가 제안하는 건 디캠프의 ‘부산’ 버전이다. 은행권이 출자하는 펀드를 동남권의 지역 기업에 100% 투자해 열악한 지역 민간 투자를 채워보겠다는 그림이다. 부산시는 북항 제1부두 내 들어서게 될 ‘글로벌 창업 허브 부산’에서 지방청년창업재단의 둥지를 틀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창업 허브 부산은 2026년 상반기 개소를 목표로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투자자, 공공 혁신기관 등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성장하는 개방형 공간이다.

디캠프는 2022년 부산 유라시아 플랫폼에 디캠프의 첫 지역 거점 공간을 열면서 지역 투자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디캠프의 지역 투자 비율은 18%로 미미하며, 첫 지역 거점 공간은 지난 5월 부산에서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디캠프는 스타트업 데뷔 무대인 ‘디데이’(D.Day)와 창업자 멘토링 프로그램인 ‘오피스 아워’ 등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며 지역 기업과 수도권의 투자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디캠프 관계자는 “내부적인 투자 방향 변경으로 부산에서는 운영을 중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지방 스타트업

지역에서는 모펀드가 결성되더라도, 나머지 민간 투자자를 찾기 어려워 펀드 결성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해 지역의 벤처 활성화 종잣돈 역할을 할 대규모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약 3000억 원 규모의 미래성장 펀드를 결성했다. 비수도권 지역에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벤처기금 중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시와 중소벤처기업부 등은 지난해 말 11개의 자펀드(지역 리그 6곳, 수도권 리그 5곳, 글로벌 리그 1곳)를 운용할 투자사를 선정했다. 각각의 자펀드는 모펀드가 30~80%를 출자하고, 나머지를 민간이 출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민간 투자자를 모으지 못해 펀드 결성이 연기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따지다 보니 지방에 일부를 투자해야 하는 펀드에 선뜻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부산시와 업계의 설명이다. 펀드 운용사는 기간을 연장받는 대신, 부산시가 운영사에 지급하는 펀드 관리 명목의 운용 수당이 하향 조정되기도 했다. 아무리 큰 모펀드를 끌고 와도 민간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면, 실제로 지역 기업들에게 돌아가는 투자의 기회는 줄어든다. 이는 부산만의 상황은 아니다. 강원도에서는 최근 모태펀드가 600억 원을 출자하기로 했지만, 민간 투자자 모집이 안 돼 400억 원을 강원도가 전액 부담하기도 했다.

■은행이 결단해야 가능

부산시가 지방청년창업재단 설립을 추진하지만, 실제 재단 설립 주체는 ‘은행’이다. 부산시는 결국 은행들이 지역의 열악한 투자 환경에 대해 공감해야 지방청년창업재단이 설립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재단이 설립되기 위해선 은행들이 재단에 출연을 하고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시는 단기적으로 디캠프가 운용 중인 일자리 펀드 3500억 원을 부산시가 이관받고 이에 더해 은행들의 추가 출연을 받아 45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하겠다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부산시 벤처투자팀 관계자는 “디캠프 펀드 중 일자리 펀드는 아직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익이 나고 있지 않다”며 “이사회의 합의와 승인만 있다면 이 펀드를 이관받아 추가 출연금을 확보해 결성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캠프 측은 “투자 체계나 투자금 조성 방안 등에 대한 공식적인 제안이 온 상황은 아니라 검토해 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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