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는 좋은데…’ 까다로운 청구 요건에 참여율 저조한 주민조례청구안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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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이후로 주민조례청구 ‘전무’
최대 수천 명까지 서명받아야 해 어려워
“까다로운 청구 요건 개선 필요” 지적

2023년 부산 해운대구 주민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주민청구조례안(안전한 급식조례) 발의를 추진하는 모습. 부산일보DB 2023년 부산 해운대구 주민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주민청구조례안(안전한 급식조례) 발의를 추진하는 모습. 부산일보DB

부산에서 주민 손으로 조례를 만들거나 수정할 수 있는 주민청구조례 제도가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2022년 법적 근거가 마련된 이후 부산에 접수된 주민청구조례안은 10건이 채 안 됐고, 그중 절반가량은 청구 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됐다.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시민의 연대 서명을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청구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주민e직접’ 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1월 이후 부산시와 부산 16개 구·군에 접수된 주민청구조례안은 총 9건이었다. 부산시의회와 함께 강서구·남구·동래구·영도구·해운대구 등 기초의회 5곳 등 총 6개 지방의회에 주민청구조례안이 각각 접수됐다. ‘주민e직접’은 행정안전부와 전국 시도가 공동으로 구축해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주민청구조례는 주민이 직접 만든 조례 제정이나 기존 조례의 수정, 폐지를 지방의회에 제안할 수 있는 제도다. 일정 수 이상 지역 주민이 동의한 조례 제·개정안을 지방의회 상임위원회가 심의한 후 본회의에 상정해 의결하는 방식이다. 부산에선 부산시의회가 2022년 1월 관련 조례를 제정했고, 뒤이어 16개 구·군에도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주민자치권을 강화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참여율은 저조한 실정이다. 지난해 1월 이후로는 부산 전역에서 주민청구조례안 신청 건수가 아예 없을 정도다.

짧은 기간 안에 최대 수천 명에 달하는 서명을 받아야 하는 청구 요건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주민이 조례를 제안하려면 만 18세 이상 선거권이 있는 청구권자를 대상으로 일정 수 이상 연대 서명을 받아야 한다. 부산시의회에 조례를 제안하려면 6개월 안에 청구권을 가진 부산 시민 286만 8900명 중 150분의 1인 1만 9126명 이상 서명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난관에 부딪혀 주민청구조례안을 제안했다가 자진 철회하는 경우가 2건 있었다.

기초의회에 조례를 제안하긴 더욱 어렵다. 3개월 안에 전체 청구권자의 50분의 1 혹은 70분의 1에 달하는 서명을 받아야 한다. 적은 곳은 510명(중구), 많은 곳은 4664명(해운대구)까지 서명이 필요하다.

조직력을 바탕으로 서명을 동원할 수 있는 시민단체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주민청구조례 제도 활용은 쉽지 않다. 해운대구의회와 영도구의회에서 수정 의결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급식 조례’도 당시 시민단체 주도로 서명자 수가 충족됐다. 2023년 4월 제정된 ‘부산시 동래구 아동돌봄 통합지원 조례’도 진보당과 부산여성회 등의 단체에서 서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주민청구조례안 남발을 막기 위한 청구 요건은 인정하면서도 현실적인 조정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산대 행정학과 김용철 교수는 “개인이 수천 명의 동의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주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청구 요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럴 경우 지방의회에서 별도 심사 과정을 도입하고, 조례 심사 과정을 강화해 조례 남발에 대비하는 보완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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