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만드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63년 벽을 넘다…이력과 실력, 모두 갖춘 세무계의 ‘여장부’
권영희 부산지방세무사회 회장
세무사의 새 길을 열다
“세무사의 위상 제고와 납세자 권익 보호”
부산지방세무사회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한국세무사회 창립 63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세무사가 지방세무사회 회장에 선출되는 역사적 순간이 지난 6월,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펼쳐졌다. 세무업계에 남성 중심의 구조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금기를 깬 이가 등장했다. 제29대 부산지방세무사회 회장에 당선된 권영희 세무사가 그 주인공이다.
권 회장은 이번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 1635명 중 942표(득표율 57.6%)를 획득하며, 249표라는 의미 있는 표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로써 그는 2000여 명의 회원이 소속된 부산지방세무사회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번 당선은 단순한 개인의 성공을 넘어, 세무사계에 여성 리더십의 가능성을 실증한 상징적 사건이자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다.
권 회장은 올해로 개업 45년 차를 맞는 원로 세무사다. 한국세무사회 등록번호 1831번. 1만 7000여 명에 달하는 현 회원 중에서도 가장 연륜 있는 세무사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출발은 평범했다. 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반 기업에 취직, 틈틈이 학업을 이어가며 세무사 시험에 도전했다. 당시는 여성에게 전문직 진출의 문턱이 유난히 높았던 시절이었다. 전국의 여성 세무사 수가 손에 꼽히던 시대, 권 회장은 세 번의 도전 끝에 1979년 제16회 세무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지금 그는 세무계의 ‘여장부’로 불리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늘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막막했지만, 세무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버텼고, 결국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부산 동의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고, 현재는 세무법인 부강 부산지사 대표로 활동하며 수많은 납세자의 든든한 조력자가 돼 왔다.
권 회장은 회무 경험뿐 아니라 국가 조세 정책과 행정 제도 개선에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실무형 리더다.
그는 △재정경제부 세제발전심의위원 △국세청 세무사자격심의위원 △부산시청과 사상구청 지방세 심의위원장 △부산동부지방검찰청 조정위원 등 공공 위원회를 통해 제도 개선과 납세자 권익 신장을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특히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장 중심형 정책 제언은 공공기관과 민간 모두에서 실효성을 인정받으며 주목받았다.
“수동적인 회무가 아닌, 능동적이고 유기적인 회무를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 숨 쉬는 세무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취임 이후 권 회장의 행보는 정책 중심의 머무름이 아닌, 현장 중심의 움직임으로 빠르게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추석을 앞두고 개최된 ‘찾아가는 마을세무사’ 행사다. 그는 직접 부산 평화시장을 찾아 전통시장 상인과 시민들과 소통하고, 성금과 지원 물품을 전달하며 세무사와 지역사회의 접점을 강화했다.
장보기 캠페인으로 전통시장 활성화에 동참하고, 무료 세금상담 부스를 운영해 현장에서 시민들과 마주한 권 회장은 단순한 회무 수행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리더로 주목받았다.
또 지난 14일에는 부산경상대학교에서 ‘부·울·경 세무회계 경진대회’를 성황리에 개최, 특성화고와 상경계열 대학생들에게 진로 탐색과 자존감 향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저도 고등학생 때 경진대회에서 1등을 한 계기로 세무사의 꿈을 품게 됐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학생 여러분도 큰 꿈을 이루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권 회장은 여성세무사회 회장(2대·9대), 부산지방세무사회 부회장, 부산세무사고시회 회장 등 여러 조직의 중책을 두루 거치며 조직 운영과 회무 전반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쌓아온 인물이다.
특히 여성세무사회 최초의 국제 세미나에서 고문 자격으로 “여성 리더십의 시대가 열린다”고 선언한 이후, 이번 당선을 통해 그 선언은 현실이 됐다.
그의 리더십은 ‘경청과 실행’이라는 두 축에 기반하고 있다. 선거 기간 동안 권 회장은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소통에 집중했고, 그 진정성은 곧 표심으로 이어졌다.
“단결하고 함께 행동하는 조직만이 세무사의 위상을 높일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세무사회를 위해 회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권영희 회장과 김삼현·박성일 부회장은 앞으로 다음과 같은 핵심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세대연계위원회 신설, 원로 세무사와 청년 세무사 간 협업과 멘토링 체계를 구축해 세대 간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기반 마련 △세무사 표준 보수표 마련과 덤핑 근절 △공정한 수임 질서를 세우고, 저가 경쟁으로 인한 업계 전반의 신뢰 하락 방지 △AI·디지털 시대 대응 전략, 디지털 세무 교육 강화 및 세무 플랫폼 관련 정책 대응으로 세무사의 전문성 강화 △타 자격사 업역 침범 대응, 전담팀 구성, 국회 및 지자체와의 정책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세무사의 법적 권한 수호 등이다.
이러한 정책적 방향은 세무사의 위상을 다시 정립하고, 미래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변화의 선언이라 할 수 있다. 부산을 넘어, 전국 세무계의 변화 이끄는 리더로 이제 권 회장은 단지 부산지방세무사회의 수장을 넘어, 전국 세무업계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그가 가진 오랜 경륜과 실무 능력, 리더십, 그리고 여성 세무사로서의 상징성은, 세무업계가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지방회장으로서 단순한 회무에 그치지 않고, 납세자와 지역, 그리고 회원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겠습니다. 그 길 끝에 세무사의 위상도, 국민의 신뢰도 함께 높아질 것입니다.”
강성할 미디어사업국 기자 shg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