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평생 지녀온 봉사 가치와 철학, 젊은이에 전해줄 수 있어 보람” 강충걸 (사)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회장
세대이음 메모리얼스토리 사업 참여
45년간 봉사의 삶, 웹툰북에도 담겨
장애인 통일 염원 대행진 30년 지속
사회적 약자와 ‘아름다운 동행’ 앞장
강충걸 (사)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회장은 올해 부산시와 부산도시공사가 추진한 ‘세대이음 메모리얼스토리’ 사업에 귀감이 되는 어르신으로 참여했다. 올해로 시행 2년 차에 들어선 이 사업은 지역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하는 도시재생 분야 문화콘텐츠 프로젝트이다. 부산 역사의 산증인인 어르신 이야기를 지역 청년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해 영상 자서전과 웹툰 콘텐츠로 제작한다. 이를 통해 도시의 정체성과 역사를 보존하는 것이 취지다.
“올해 초 부산시의 추천을 받아 이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영상 자서전을 촬영하면서 45년간 봉사에 매진한 삶의 스토리를 들려줬습니다. 부산도시공사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최근 펴낸 웹툰북 ‘세대이음 메모리얼스토리’에도 저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달 16일 부산 중구 신창동 청년작당소에서 ‘세대이음 메모리얼스토리’ 문화 교류 행사가 열렸다. 올해 사업의 결과물인 영상 자서전 상영과 웹툰 전시를 비롯해 사진전, 네트워킹,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 행사장에서 소개된 강 회장의 메모리얼스토리 키워드는 ‘봉사로 다시 살아난 삶’이다. 전쟁터의 참혹함을 가슴에 새기고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이를 젊은 세대와 공유하는 장이 펼쳐졌다.
(주)파나컴 대표이사인 강 회장은 이날 문화교류 행사에 참석한 100여 명의 대학생들에게 “여러분은 3억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다. 당신들은 챔피언이다. 챔피언처럼 행동하라”고 ‘임팩트’ 있게 인사말을 했다. 이 말은 미국의 성공학 연구자인 나폴레온 힐의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강 회장은 이 말을 1973년에 처음 접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현실에서 어려움이 닥쳐도 좌절하지 말고, 각자 챔피언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라고 주문했습니다. 이러한 마인드를 가진다면 ‘봉사의 챔피언’이 된 저처럼 인생이 바뀌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강 회장이 45년간 통일 염원과 장애인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70년 월남전 참전이었다. 당시 베트남 호이안 지역의 청룡부대(짜빈동 11중대)에 소속된 강 회장은 수십 차례 작전과 전투를 겪으며 수많은 전우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 참혹한 현실을 목격했다.
“이 전쟁터에서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친 전우와 장애인들을 위해 내 삶을 바치겠다고 하늘을 향해 맹세했죠. 그 뒤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는 그런 다짐을 10년 뒤 현실로 옮겼다. 1980년 2월 부산 최초의 장애인 사회단체인 ‘부산지체장애인복지회’를 설립했으며, 발기인 대표를 맡아 10년간 활동했다. 1985년 경기도 파주를 방문해 ‘녹슨 철마’를 보면서 통일 염원을 마음속에 품게 됐다고 한다. “1991년 8월 한라산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과 화합,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장애인 통일 염원 대행진’ 한라에서 백두까지 행사를 시작했죠. 그 뒤 매년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이순신 장군 유적지, 해군·해병대 등에서 행사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3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렀습니다.”
비영리단체가 장애인을 위한 공익적인 행사를 30년간 이어온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이 행사에서는 통일 염원을 위해 평화통일 결의문을 낭독하고 백두산의 물과 흙, 한라산의 물과 흙을 섞는 ‘합수합토제’를 거행한다. 행사에는 매년 400~500여 명의 장애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다. 30회 행사까지 누적 참가자만 1만 8500여 명에 달한다. 단 한 번의 안전사고도 없었다고 하니 기적이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강 회장은 지난달 10~12일 장애인과 자원봉사자 130여 명과 함께 의미 있는 해외 탐방에 나섰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일본 오이타현 벳푸시 사회복지법인 ‘태양의 집’에 초청을 받아 방문한 것이다. 그는 “‘보호가 아닌 기회’를 모토로 장애인 복지의 길을 개척해 온 일본의 현장을 직접 보고 배운 소중한 자리였다”며 “장애인들이 기계 부품을 조립하고, 매장에서 손님을 맞으며,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현장은 그 자체로 감동이자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부산 동구 초량동 커피타운빌딩에서 장애인 정보화 교육, 장애인 운전면허 취득 교육, 시 낭송 아카데미, VR 가상 체험, 3D 영화관, 가족사랑행복나눔대회, 자기계발서 전용도서관, ‘영혼이 춤추는 도서관’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각종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연간 프로그램 참여 인원만 1만여 명에 달합니다. 특히 2024년 5월에는 장애인 운전면허 취득 교육과 관련해 전국 장애인 비영리단체 최초로 500명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현재는 536명으로 늘었습니다.”
그가 장애인을 위한 헌신적인 공로를 인정받아 ‘사회복지유공자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30대에 부산시장 표창, 40대에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50대에 대통령 표창, 60대에 국민포장을 차례로 받은 데 이어 2022년 4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강 회장은 1970년 장애인을 위한 봉사를 하기로 한 초심을 잊지 않고, 지금도 사회적 약자와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