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정거장 공연
‘다음 정거장에서 만나게 될까/ 그리워했던 얼굴을/ 다음 파란불에는 만나게 될까/ 그리곤 했던 풍경을….’ 2021년 발매된 아이유의 ‘정거장’ 가사 일부다. 노래 가사처럼 정거장은 떠남과 만남이 교차하고 도시의 기억이 켜켜이 쌓이는 공간이다. 김수희의 ‘정거장’ 또한 ‘너와 나의 인생이 있는 곳’이라 노래하며 이 애틋한 정서를 담아낸다. 특히 부산은 그 어떤 도시보다 정거장의 정서를 노래와 함께해 왔다. 1954년 발표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 대표적이다. 6·25 전쟁 후 피난민들의 슬픈 귀향 여정을 감성적으로 풀어낸 이 노래는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이라는 구절로 시대의 아픔과 그리움을 전한다.
과거 정거장이 이별의 아픔을 노래했다면, 오늘날은 공연이라는 새로운 매개를 통해 도시의 일상과 희망을 담아내려 한다. 미국 뉴욕의 ‘더 라이드(The Ride)’는 맨해튼 교통 체증 중 버스투어에서 2~3분간 펼치는 공연으로 관광객을 사로잡는다. 영국 런던 세인트판크라스역의 피아노는 누구에게나 열린 무대가 되어 예상치 못한 순간 울려 퍼지는 연주로 도시에 특별한 묘미를 더한다. 이처럼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예술은 일상에 스며들고 시민은 의도치 않은 선물처럼 문화와 마주한다. 도시철도 서면역, 미남역의 소규모 공연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곳곳에서 정거장은 단순한 환승지를 넘어 도시 문화의 생생한 실험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부산 해운대구가 뉴욕의 더 라이드에서 영감을 얻어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해변열차 정거장을 활용한 관광 콘텐츠를 선보인다. 해변열차 정차 시간을 이용해 해운대문화예술단 소속 청년 예술가들이 K-POP 댄스 등 열정적인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추석 연휴부터 특정 시간대에 ‘해운대 더 라이드 해변열차’라는 이름으로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정거장 공연의 진정한 매력은 누구나 오가는 일상 공간에서 대중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의 통로였던 공간이 뜻밖의 문화적 무대로 변모한다. 떠남의 공간에서 머무는 장소로 변하는 순간 도시는 문화의 힘으로 다시 호흡하기 시작한다. 잠시 멈춘 발걸음은 음악 속에서 숨 고르듯 마음을 달랜다. 짧은 2~3분 무대지만 시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도시의 기억을 새기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임팩트 있는 공연이 남긴 잔향은 의외로 오래간다. 부산의 정거장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