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도 억울한데 폐건물 같은 환경서 불안”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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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빌라왕’ 피해 세입자들
임대인 구속으로 관리 공백
각종 하자·시설 고장 잇따라
심야 외부인 범죄 위험 상존
동래구청, 지원 방안 검토

부산 동래구 온천동 A 오피스텔 입구와 복도에 생활 쓰레기가 무단으로 버려져있는 모습(왼쪽과 가운데). 옥상으로 이어지는 철제 문도 녹슬고 파손된 상태로 방치됐다. 독자 제공 부산 동래구 온천동 A 오피스텔 입구와 복도에 생활 쓰레기가 무단으로 버려져있는 모습(왼쪽과 가운데). 옥상으로 이어지는 철제 문도 녹슬고 파손된 상태로 방치됐다. 독자 제공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한 오피스텔이 전세사기 여파로 경매에 넘어간 뒤 2년이 넘는 관리 공백 속에 폐건물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른바 ‘부산 빌라왕’으로 불린 임대인이 구속된 이후 실질적인 관리주체가 사라지자 각종 하자와 시설 고장이 잇따른데다 외부인 출입까지 빈번해지면서 세입자들은 불안과 불편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14일 동래구 A오피스텔 입주민들에 따르면, 2022년 4월 준공된 11층 1개 동 33세대 규모의 이 건물은 2023년 2월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하면서 경매에 넘어갔다. 같은 시기 임대인이 구속되면서 실질적인 관리주체가 사라졌고, 이후 건물 곳곳이 급속히 훼손됐다.

입주민들은 대부분 2022년 하반기에 입주한 전월세 세입자들이다. 이날 〈부산일보〉 취재진과 만난 한 입주민은 신축 당시부터 시공 부실로 외벽이 손상되고 비상구 문이 떨어지는 등 하자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부산 빌라왕’으로 불린 임대인이 전세사기 혐의로 구속된 뒤에는 보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물탱크와 저수조 등 위생 관리까지 중단되면서 세대 내부 곳곳에는 배수구 역류로 악취가 발생하고, 일부 층은 누수로 창틀과 벽지에 곰팡이가 번졌다. 화재경보기 고장 등 각종 시설 하자도 이어지며 세입자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심야 시간대 외부인 출입도 잦다. 일부는 건물 내 복도에서 술병을 깨뜨리거나 계단에 쓰레기를 투기하는 등 소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래경찰서 온천지구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이 건물에서 외부인 출입 관련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세입자들은 밤마다 낯선 사람들이 드나들어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낼 수밖에 없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4년째 거주 중인 한 입주민은 “이번 여름엔 곰팡이 피해로 제습기를 돌리고 제습제까지 갖다 놓으며 살고 있다”며 “범죄 위험까지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산 빌라왕’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세대수는 약 138세대 이상으로 파악된다. 피해 규모는 수십억 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A오피스텔을 비롯해 부산 전역의 신축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 세입자들이다. 대부분이 청년층 혹은 사회 초년생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낡은 시설과 불안한 거주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자 동래구의회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구의회는 지난 5월 천병준 의원의 발의로 '전세사기 피해자 안전관리 지원 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향후 예산을 확보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겠다고 밝혔다.

천 의원은 “전세사기 특별법이나 시 차원의 대책만으로는 현장의 피해가 너무 크다”며 “임차인이 직접 공사할 경우 행정이 일부 비용을 보전하는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래구청은 내년 추경에 관련 예산을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건물당 최대 500만 원 내외의 관리·수리비 지원을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래구 건축과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 건물의 관리 공백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관련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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