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조로증 신약 개발 매진 희소병 치료의 새 길라잡이 [스타트업 살리기 프로젝트]
3 - 피알지에스앤텍
세계 최초 소아조로증 치료제
내년 미 FDA 가속 승인 신청
제2형 신경섬유종 신약도 임상
근감소증 등 난치병 연구 확대
소아조로증 치료제를 개발 중인 피알지에스앤텍 박범준 대표.
글로벌 제약사들이 경제성을 이유로 외면하던 치명적 희소병 ‘소아조로증’ 치료에 희망이 보이고 있다. 건강한 사람보다 8~10배 빠르게 노화가 진행돼 평균 수명이 10대에 그치는 이 병은 전 세계 환자가 200여 명에 불과해 신약 개발의 불모지로 여겨졌다. 하지만 부산의 스타트업이 세계 최초 치료제 개발에 나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 받고 있다. (주)피알지에스앤텍(PRG S&Tech)이 그 주인공이다.
2017년 9월 부산 금정구에 둥지를 튼 피알지에스앤텍의 핵심 파이프라인은 단연 세계 최초 신약으로 개발 중인 ‘프로제리닌’(Progerinin)이다. 소아조로증(허친슨-길포드 조로증 증후군) 치료를 목표로 하는 이 신약은 지난 1월 미국 보스턴 아동병원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2상 첫 환자 투여를 시작했다.
피알지에스앤텍은 이 임상 결과를 바탕으로 2026년 1분기 내 FDA에 ‘가속 승인’을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가속 승인은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의 신약을 신속하게 환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제도로, 피알지에스앤텍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방증한다. 피알지에스앤텍 박범준 대표는 “10여 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 중간 결과가 긍정적이어서 좋은 성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직 부산대 분자생물학과 교수이기도 한 박 대표의 창업 계기는 ‘사명감’이었다. 그는 “연구 과정에서 소아조로증 치료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환자 수가 너무 적어 글로벌 기업 누구도 개발에 나서지 않는 현실을 봤다”며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직접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철학은 ‘소수의 환자를 위한 위대한 시작, 행복한 모두를 만드는 기적’이라는 회사의 슬로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알지에스앤텍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제2형 신경섬유종증(NF2)’ 치료제 ‘트리뉴민’(Trineumin) 역시 지난해 6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내 임상을 시작했으며, 내년 미국 임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말초신경계에 종양이 생기는 이 병은 청력, 시력 상실과 하반신 마비까지 유발할 수 있지만 아직 허가된 치료제가 없다. 최근에는 루게릭병(ALS) 치료제 ‘아미소딘’(Amisodin) 역시 미국 FDA로부터 임상 1상 계획을 승인 받는 쾌거를 이뤘다.
이러한 뚝심 있는 연구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한 번은 박 대표가 연 설명회에 자녀가 제2형 신경섬유종증을 앓는 한 부모가 찾아왔다. 박 대표는 “‘이 병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연구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다’는 말에 미안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과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신약 개발을 넘어선다. 희소질환 연구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으로 근감소증, 골다공증, 나아가 알츠하이머, 파킨슨병과 같은 일반 노화 및 퇴행성 질환으로 치료 영역을 넓히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박 대표의 최종 목표는 희소질환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를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과 연구 확대를 위해 2026년 조로증 치료제의 가속 승인 신청을 기점으로 기업공개(IPO)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표는 “희소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거대 제약사들이 뛰어들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 같은 지역의 스타트업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앞으로도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 연구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장병진 기자 joyful@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