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살라”며 뇌병변 친형 살인… 국민참여재판 거쳐 ‘징역 10년’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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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31일 국민참여재판 열어
피고인 “음주 후 우발적 살인” 주장
검찰 “화가 나 살인, 감경 조건 아냐”
배심원 9명 징역 7~12년 선고 의견

부산지법 청사. 부산일보 DB 부산지법 청사. 부산일보 DB

부산에서 뇌병변 장애가 있는 친형을 데리고 살다가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범행에 취약한 형을 화가 난다는 이유로 죽였다며 징역 10년 선고를 요청했고, 피고인 측은 홀로 남은 형을 부산에 데려와 건강검진까지 마친 상태에서 술을 마시고 우발적 범행을 저질렀다며 집행유예도 고려해달라고 호소했다. 배심원 9명은 징역 7~12년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냈다.

31일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 A 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 평의를 거친 배심원 9명 의견은 징역 10년이 5명, 징역 7년이 2명, 징역 12년과 징역 8년이 1명씩이었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이 밝힌 양형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형을 정했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 의사를 고려해 법률 전문가가 아닌 국민을 배심원이나 예비 배심원으로 선정해 진행하는 재판이다. 이번 재판에는 배심원 9명과 예비 배심원 1명이 참여했다. 재판부는 이날 배심원들에게 “증거 재판주의 원칙에 따라 법정에서 조사한 증거에 기초해 판단해야 한다”며 “증거를 믿을 수 있는지,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는지 자유 심증주의 원칙에 맞게 여러분 경험과 상식을 바탕으로 판단해 달라”고 했다.

검찰이 이날 밝힌 공소사실에 따르면 A 씨는 올해 4월 19일 오후 부산 사하구 감천동 집에서 친형인 70대 남성 B 씨의 목을 졸라 숨지게 만든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형도 힘들고 살 만큼 살았으니 이제 그만 사십시오”라고 말하며 B 씨에게 안방에 가서 자라고 했고, 혼자 술을 마시다가 ‘형이 삶을 연명하는 게 무익하다’는 생각이 들어 안방에 들어가 형을 죽였다고 진술했다.

2006년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은 B 씨는 강원도 인제군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A 씨는 올해 4월 B 씨를 부산으로 데려와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인지 능력이 낮은 B 씨는 사건 전날과 당일 연이어 길을 잃어 어렵게 집으로 돌아왔고, A 씨는 술을 마시다가 친형인 B 씨를 죽인 것으로 조사됐다.

A 씨가 공소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번 국민참여재판은 사실상 양형을 정하기 위해 진행됐다. 형법 제250조 제1항에 따르면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다. 재판부는 “법에 따라 감경을 하게 되면 징역 2년 6개월 그리고 그 이하로 양형이 내려갈 수도 있다”며 “집행유예 혹은 무기징역이 선고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A 씨 측은 의도적인 게 아니라 우발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A 씨 변호인은 “A 씨가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을 앓았고,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이혼과 실직을 겪으며 증상이 악화됐다”고 했다. 이어 “B 씨를 부산에 데려온 후 피부과 진료를 받게 하고, 본인 돈으로 대장과 위 내시경 검사까지 해준 상태였다”며 “A 씨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씨 측은 자수를 한 데다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형을 감경할 수 있다는 의견도 냈다. A 씨 변호인은 “자수하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며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술을 1.8L 정도 마신 상태였던 점을 참작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검찰은 A 씨가 돌봄 등에 조언을 받을 수 있었지만, 화가 난다는 이유로 형을 죽인 것이라며 반박에 나섰다. 검찰은 “A 씨는 2주 정도만 같이 산 상태에서 B 씨가 사회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결국 화를 참지 못해 형을 살해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참작할 동기가 없는 ‘보통 동기 살인’이라며 징역 10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A 씨가 정상적인 판단력이 현저히 결여된 상태가 아니었다”며 “음주 운전뿐 아니라 음주 후 폭력 전력도 있기에 타인에게 해악을 미칠 가능성이 있으면 심신미약이더라도 감경 대상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보통 동기 살인’ 기본 양형 기준인 징역 10년~16년 중 여러 사정을 고려해 구형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A 씨 측은 “술에 취해 반복적으로 B 씨에게 범행을 한 건 아니다”라며 “평소 둘 사이에 갈등이 없었고, 순간적으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라며 집행유예가 가능하단 점도 언급했다. 이날 증인 신문에 나선 A 씨 동생과 방청석에 있던 A 씨 딸은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뒤이어 배심원 9명이 평의를 진행했고, 재판부는 감경 사유 없이 A 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 경위와 중대성 등을 고려해 자수를 했다고 감경을 하지 않고, 유리한 양형 요소로만 참작하기로 한다”며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 전에 ‘1시간 뒤 형님을 죽일 테니 뒤처리를 부탁해 달라’고 112에 신고했다”며 “범행 이후에는 지인과 동생에게 연락해 형을 죽였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심신 미약 상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심신 미약 상태였다 해도 인위적 감형 사유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장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라며 “남녀노소, 건강 상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가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와 사회가 보호해야 할 최고의 법익으로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A 씨가 피부병이 심해진 B 씨를 부산으로 데려오고, 각종 건강검진을 받게 해줬다”며 “사건 전날에는 뇌병변 관련 치료를 예약하기 위해 부산대병원에 방문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사정들을 보면 A 씨 범행은 계획적 살인이 아니라 B 씨가 실종되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자 홧김에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유족이 A 씨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고,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 등 정신적 문제가 범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 직후 112에 신고해 자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참여재판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해 배심원들이 밝힌 의견을 최대한 존중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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